[사진으로 보는 社史] 어느 교사의 편지로 시작된 벽지 학교 도서기증
1982년 4월 30일 강원도 명주군(현 강릉시) 주문진의 한 초등학교에서 GS칼텍스 앞으로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인사도 안면도 없는 생면 부지한 터에…”로 시작한 장문의 편지였는데요. 고기잡이로 생계를 어렵게 잇고 있는 어촌의 벽지 초등학교 학생들은 몇 권의 교과서와 몽당연필이 전부라는 이야기와 함께, 한 권의 동화책도 없는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전해 주고 싶은 교사의 진심이 담겨있었어요.
이 교사는 “푸른 바다와 하늘을 보며 아름다운 꿈을 키우고 훌륭한 인성을 키워나가는데 백 마디의 말과 백 번의 채찍질보다 어려서부터 많은 책을 읽도록 하는 것이 소신”이라며 아이들이 한글은 잘 읽을 줄 아니 책을 보내 달라고 호소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직원들은 300여 권의 동화책을 기증했고, 이 사연은 주간매경(현 매경이코노미)에도 소개되었다고 해요.
1982년 7월 6일, 사보 편집실에서는 직원들이 기증한 도서와 함께 회사에서 마련한 500여 점의 문구를 직접 전달했다고 하는데요. 기증받은 학생들은 환호와 함께 펄쩍펄쩍 뛰며 감격하였고, 교사들은 정성 어린 성의에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시하며 이 책을 학생들의 정서교육에 최대한 활용하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교장 선생님은 고풍스러운 문체로 “600리길 원격지임에도 직접 도서와 선물을 보내주어 감사무량”이라는 편지를 보내왔다고 하네요. 기대를 뛰어넘는 도움으로 어린이 독서 활동과 함께 교육에 정진할 것이라 다짐하면서 회사와 도서 기증자, 도서수집과 전달에 수고하신 분에게 고마움의 뜻을 또 한 번 전했다고 합니다.
당시 이 학교의 학생들은 1970~1975년에 태어났을 테니 지금은 40대 중, 후반부터 막 50대가 되었을 텐데 어떻게 성장했을지 궁금합니다.
이 학교는 1966년에 개교하여 올해 53회 졸업식을 하였고 현재는 6학급(학년당 1학급)과 병설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2020년에는 7명의 신입생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처음 편지를 보냈던 교사는 다음 달 고마운 마음을 담아 ‘칼텍스 할아버지’라는 제목의 동화 한 편을 보내왔어요. 마지막으로 함께 읽어볼까요?
칼텍스 할아버지
유난히도 화사한 아침, 하늘이 오늘도 무척이나 더울 것 같은 날씨였다.
조반을 지으면서 가만히 생각하니 오늘은 꼭 날씨 좋은날 이불 호청들을 모두 다 뜯어 빨아야겠구나 생각이 들어 서둘러 아침일을 마치고 가스를 아끼려면 그래도 석유풍로가 낫겠지 싶어서 헌 풍로를 뒷 베란다에 꺼내놓고 석유통을 들고 길건너편 석유직매소로 달려 갔다. 부지런한 석유집 할아버지는 벌써 길앞을 쓸어놓고 헌의자에 걸터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할아버지 석유 파셔요.”
“예, 얼마나 드릴까요?”
“넉되만 주셔요. 통은 닷되 통이라는데 닷되가 다 들지 않던걸요.”힐끗 통을 돌아 본 할아버지는
“왜 닷되가 안 들어요. 엿되는 들겠수다.”
“아니어요. 여기 아시오기 전에 주유소 바로 뒷집에 살았기 때문에 직접 그 곳에서 사 썼는데 닷되를 사면 늘 넘쳐서 애를 쓴걸요.”하면서 내심 옳거니 이 집은 됫박을 속이는구나. 통은 같은 통인데 엿되도 들어가겠다니 다른 직매소를 찾아갈까 망설이는 중에 할아버지의 말은 점점 더 이상해진다.
“주유소에서 사면 석유가 다 좋은 줄 아시오? 우리 석유는 저 전라도 벌판에서 나는 석유인데 우리가 직접 가져오기 때문에 냄새도 없고 그을음도 전혀 없고 또 아주 마뎌서 다른 석유보다 오래쓰는 석유요.”
도무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어야될까? 노인의 얼굴엔 자못 살기마져 띄운 자신에 찬 얼굴이었다. 전라도에서 직접 가져오는 석유라니 직매소 구조의 영세성으로 보아 도저히 믿기 어려운 말이며 석유면 다 똑같이 그을음 없고 냄새없는 석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고 마딘 석유리나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내심 불쾌하여 그냥 돌아설까 하다가
“할아버지, 우리나라 전라도에서 무슨 석유가 나나요?”
“왜 안 나와요. 호남정유라고 전라도에서 나는 석유인데 미국회사에서 원료를 보내주는 갈텍스, 갈텍스도 모르시요?”‘그렇지, 호남정유 기름이라고 이렇게 으시대고 호통을 치는구나’ 순간 평소에 무심히 보고 들었던 ‘호남정유’ ⌜칼텍스⌟의 마크가 머리에 떠올랐다.
다른 데로 가자니 시간이 걸리겠고 하여 넉되를 사가지고 올라와 헌풍로에 붓고 조금 후에 불을 당겼다. 웬일일까? 신통하게도 냄새가 나고 그을던 풍로에서는 새파랗고 깨끗한 불꽃만 팍팍 소리를 내며 타고있지 않은가?
냄새가 골이 아파서 언제나 밖에 내놓고도 주방 문을 꼭 닫고 쓰던 풍로였었는데 신기한 일이었다. 의외로 닥친 기쁨은 작은 일이지만 나에겐 무척 힘이 되어 주었다. 거뜬히 빨래를 삶아 빨아 줄에 널고 쳐다본 하늘은 너무도 청명하였다.
점점히 뭉게구름이, 그리고 삼층 밑으로 펼쳐지는 이 여름 열기속에 시원한 녹음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을의 풍경이 오늘따라 무척이도 아름답다.
가슴을 펴고 맑은 공기를 심호흡하면서 먼데서부터 차츰 가까운 데로 시선을 옮기며 바라볼 때, 아⏤ 거기에 할아버지, 칼텍스 할아버지가 지금도 석유통을 든 어떤 여인에게 무엇이라고 열심히 설명하고 있지 않는가? 들리지는 않지만 아까 나에게처럼 ‘호남정유’, ‘칼텍스’를 외쳐대고 있으리라.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생업을 잇기 위한 자신의 생활태도가 아니겠는가? 활기차고 자신있는 생업을 이어갈 때 자존(自存)의 의미를 알게되고 그것이 정당하고 떳떳할 때 고달프나마 자존(自存)의 귀중한 가치를 우리는 터득할 것이다. 자신에 찬 저 칼텍스 할아버지의 눈은 호남정유의 불이 꺼지지 않는 한 짙은 빛이 나리라.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우리집도 호남정유 기름으로 올 겨울 월동용 기름을 탱크에 사붓고 달려가서 “할아버지, 우리 집도 이제부터 꼭 호남정유를 쓰리고 했어요”하면 노인은 얼마나 좋아할까?
주름진 노인의 웃음을 어서 빨리 보고 싶다.
칼텍스 할아버지, 힘을 내셔요.
그리고 오래 오래 사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