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 민서
민서는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떼가 묻은 교복을 입고 Wee센터 마음톡톡 교실을 찾았습니다. 민서는 학교 폭력 피해, 외톨이 경험, 가출과 절도 등 다양한 이유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중학교 1학년 남학생 7명으로 구성된 집단의 일원이었습니다. 대부분 자기표현에 서툴고, 또래관계 형성에 소극적이었습니다.
이에 마음톡톡 프로그램은 미술 매체를 사용해 자기표현을 촉진하고, 이를 통해 집단 내에서 보다 안전한 심리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의 방법을 훈련할 수 있도록 총 12회기의 표현예술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자살과 죽음의 이슈를 표현할 때
민서는 첫 회기부터 자살과 죽음을 언급해 삶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와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냈고, 그로 인한 내적 스트레스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해서인지 우울감과 함께 무력감을 보이곤 했습니다.
“아니, 아니에요 자살이라고 말한 거 아니에요.
그냥 죽어서 누워 있는 거예요”
첫 회기에서 불쑥 자살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냈다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자살? 이라고 되묻는 치료사의 반응에 민서는 서둘러 자신의 말을 부정하며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습니다. 또한, 민서의 그림에는 죽음 살인 자살 등이 소재로 자주 등장했습니다.
그때마다 치료사는 우회적으로 생명의 소중함과 존엄을 이야기 하며, 자살 충동을 느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집단 구성원 전체에게 안내하는 등 민서가 자살 이슈를 보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지켜보며 기다렸습니다.
죽고 싶다는 아이, 죽을 만큼 불안하다는 아이
6회기에 이르러 민서는 스스로 자살 충동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민서는 치료사가 준비해둔 감정 스티커 중에서 불안한 이라고 씌여있는 스티커를 찾아 들고 왔습니다.
지금 제 감정이 바로 이거에요 저는 지금 불안해요
그리고 민서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느껴온 자살 충동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서의 자살 충동은 친구의 이유 없는 폭행으로 인 한 것이었습니다.
민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늘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민서가 죽어야겠다고, 자살해야겠다고 말한 것은 결국 죽을 만큼 불안하다는 호소였던 것입니다.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감정 표출을 돕는 미술 매체
표현예술치료프로그램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표현을 기반으로 다양한 예술매체 작업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표출할 수 있습니다.
특히 미술은 말이나 글로는 표현하기 벅찬 감정이나 생각을 상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심리적 경직을 완화할 수 있는 매체입니다.
초기에는 자살해서 혹은 죽어서 누워 있는 자신, 토막 낸 자신의 신체 등을 작품의 소재로 표현하며 죽음을 상상하고, 자살을 생각하는 표현을 습관적으로 하던 민서는 종결기로 접어들면서 자기 자신을 살아있는 신체로 표현하거나 자신의 미래나 원하는 집의 모습 등 자신이 살아가야 할 공간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잘난 게 하나도 없으니 죽어도 그만일까?
자살 충동을 느끼는 아이들은 자기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하지 못합니다. 민서 역시 자신은 ‘잘난 게 하나도 없다’ 며 스스로를 비하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다만 그 강점을 스스로 찾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말하자 민서는 쑥스러워 하면서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민서의 강점은 용기이며,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도와줄 것을 당당히 요구하는 힘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격려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불안한 마음과 자살충동의 이유를 이야기한 민서의 행동을 지지하고 격려한 것입니다. 그러자 민서에게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저는 컴퓨터를 잘 다뤄요. 게임도 잘하고, 채색도 잘해요”
민서의 변화는 집단 전체의 변화로도 이어졌습니다. 집단 구성원들이 서로의 강점을 찾아주는 과정에서 자신의 강점을 스스로 찾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유능감은 한번 맛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달콤함입니다. 스스로 찾은 강점을 통해 유능감을 증명하고, 이를 인정받게 되면 부정적 자기 인식은 긍정적 자기인식으로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자기 인식 저울이 긍정으로 기우는 순간, 잘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 잘하지 못했다는 절망감,그리고 다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무력감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의외로 간단한 문제 해결 방법, 그러나 그 간단한 방법을몰라 힘겨운 아이들
오랜 시간 민서를 괴롭혀온 학교 폭력 문제는 Wee센터를 통해 학교폭력위원회에 전달되었습니다. 민서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행사해온 가해 학생은 적법한 과정을 거쳐 처벌을 받게 되었고, 더 이상 민서를 괴롭히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민서에게 중요한 것은 가해 학생의 처벌이나 그것을 계기로 학교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는 결과가 아닙니다.
민서는 자신의 상황과 그 상황으로 인한 자기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일을 해내기 위해 민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큰 용기를 내야 했고, 마침내 그 용기는 지지와 격려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