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해 보이는데? 마음이 힘든 아이들도 아니잖아?
마음톡톡 교실힐링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제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정상과 비정상, 좋음과 나쁨, 쉬움과 어려움 등 선을 긋는 이분법을 아주 쉽게 사용합니다. ‘걔는 정상이 아냐’, ‘그 사람은 원래 나쁜 사람이야’, ‘너는 하나도 안 힘들잖아’
하지만 사실 이런 이분법은 말하기의 편의를 위해서 만들어낸 말에 불과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판단하는 영역에서는 더더욱 그러하죠. 평범해 보이니까, 공부 잘하는 아이니까, 아무 사고도 일으키지 않으니까 마음이 힘들 이유도 없을거라는 생각은 우리의 선입견이나 편견이 아닐까요?
평범한, 아니 평범해 보이는 우리 아이들의 반전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그저 평범한 여학생 지연이
*학생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지연이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중학생의 모습이였어요. 적당히 소극적이고, 적당히 의욕 없는, 그렇지만 때로는 싫어하는 것에 투덜투덜 불평도 늘어놓을 줄 아는, 조용조용한 성격에 반 내에서 눈에 잘 띄지 않아 큰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그런 아이였죠.
하지만 마음톡톡에 참여한 지연이는 집단활동에서 친구들에게 자기 고집이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항상 자기 경계가 확실한 모습만 보여줘서 다른 친구들이 지연이를 편히 대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죠. 겉보기엔 고집스럽고 도도해 보였지만, 앞에 나서서 발표하는 자리에서는 얼굴이 엄청 빨개지곤 했지요.
실제로 지연이는 부끄러움이 너무 많은데, 그런 자신의 모습을 창피하다고 생각하고 친구들한테보여줘야 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나 지연이는 그런 자신의 마음을 모르고 있었고, 친구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어요. 지연이는 마음톡톡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 협력하는 경험 속에서 자기경계를 스스로 조금씩 허무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때론 자기표현에 힘을 실어 함께 나눠보는 시도도 해보고, 때론 마냥 밝은 표정으로 친구들과 친밀감 있게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구요. 자신의 집단을 향한 시도들이 집단원들에게 수용되고 지지 받는 순간들이 쌓이게 되면서 지연이 스스로도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에 점점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느껴졌어요.
나중에는 공연준비 과정에서 리더로서 집단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큰 변화된 모습도 보였어요. 내 자신이 바로 서야 다른 친구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걸 지연이는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지연이의 사전/사후 진단 결과
*정서친밀도 : 다른 학생들에게 화살표를 받은 피지목 수를 중심으로 점수화한 것으로써, 그 학생의 반 내에서의 정서적인 교우관계 위상을 의미함
외로운 공부 1등 영호
영호는 항상 상위권의 성적을 내는 굉장히 공부를 잘하는 아이에요. 반 학생들한테도 물어보면 영호는 수업내용에 대해서 질문하거나 함께 시험공부를 하면 자기 성적이 오를 것 같은 친구로 제일 많이 언급되었고요. 하지만 마음톡톡에서 만난 영호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어요. 친구들과 함께하는 집단활동에서도 적극적이지 못하고, 역할을 수행하려는 의지도 부족했고요. 특히 남한테 멋지게 보여야 된다는 강박이 있어, 타인의 시선을 굉장히 의식하는 편이었어요.
자신의 내면이 온전히 세워져 있지 않고, 외부의 것에 억눌린 듯한 모습이었어요. 프로그램 초반에 자신을 나타내는 애칭짓기에서 영호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곰’이라고 이름 지으면서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책임감과 스트레스에 많이 부담을 느끼고 있었어요. 공부를 잘하기 때문에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영호는 실은 심적으로 많이 외로워 보였어요.
자기 고민을 털어놓거나 일상적으로 같이 노는 친구도 별로 없는 상태였구요.
마음톡톡은 그런 영호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어요. 이 시간은 내 옆의 친구들과 온전히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었거든요. 공연을 준비하면서 이 집단은 서로 자신의 캐릭터와 정반대되는 역할을 맡는 연기 연습을 진행했어요.
영호도 자신과 정반대되는 성격의 역할을 연습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성격과 성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는 자신감과 당당함으로 이어졌고, 친구들한테도 훨씬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였어요.
프로그램 마지막 시간에는 자신을 나타내는 애칭을 ‘호감 가는 동네 아재’로 다시 지으면서, 영호가 자기자신을 누르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겉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게 된 모습에 함께 했던 치료사들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