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 대처법 – 미술치료사 박승숙

어린이들의 한 뼘 친구 마음톡톡이 마음치유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드립니다.

일전에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톡톡 치료사들은 다른 아이들이 아닌,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치료를 할까? 왜 그런거 있잖아요. 방송 중에 화려한 입담으로 끊임없이 얘기하는 국민MC 유재석도 집에 돌아가면 말수가 줄어든다구요. 문득 심리치료를 업으로 하는 우리 치료사 선생님들은 자기 자녀들을 대하는 일상이 과연 어떨까가 궁금했었죠. 그러던 중 마음톡톡 교실힐링 치료사 대장이신 박승숙 선생님과 업무 회의 도중 이런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maum interview 04 마음톡톡 마음톡톡

마음톡톡 교실힐링 아이들의 특징적인 성향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다가, 교실힐링 아이들이 모두 중학생이다보니, 중2병에 대한 얘기로 대화가 번져나갔죠. 중2병에 대해 느끼는 마음톡톡 치료사의 생각, 그리고 자기자녀와의 중2병 경험담. 한번 들어보실까요?
Q. 한때 중2병, 중2병, 이슈가 많이 되었던 말이잖아요. 말 잘 안듣고, 엇나가고, 허세부리는…이런몇몇의 파편적인 느낌들은 알겠는데, 중2병이 뭐다! 라고 정의를 잘 못내리겠어요. 선생님은 중2병이 어떤거라고 생각하세요?

음… 개인적으로 저는 중2병이나 사춘기나 다를 바 없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성호르몬이 돌면서 신체적 변화가 벌어지는 시기를 사춘기라고 광범위하게 본다면, 그로 인한 심리 정서적 변화가 생활에서 가장 도드라져 문제처럼 보이는 시기를 중 2라고 콕 짚어 부르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하지만 여자 아이들의 경우는 중 2가 사춘기 현상의 피크는 아닌 것 같아요. 사춘기가 일찍 시작되는 아이들은 벌써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빠른 변화를 보여 중 2-3 때 벌써 안정기에 접어들며 철들기 시작하거든요. 초등학교 3~4학년 나이가 제대로 두 자리 수가 되는 때잖아요. 십대의 반절이 아이들을 흔들어놓는데 그 끝자락인 중 2 때쯤의 아이들 모습이 철들기 전 마지막 발악처럼 보여 중2병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어요. 여자 아이들에 비해 사춘기 현상이 조금 늦게 나타나는 남학생들은 그 즈음이 행동 표출이 많을 때인데 학교나 가정이나 사회에서 볼 때 그들의 행동이 성가시고 위협적이고 걱정스러워서 ‘병’ 취급을 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거겠죠. 사춘기는 십대 초반의 아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나타나는 생리적, 뇌신경학적, 신체적 변화를 부르는 객관적 이름이라면, 중2병은 십대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각과 관점을 보여주는, 도리어 주관적이며 사회적인 반응 같아요.

Q. 선생님도 자녀분이 있으시잖아요?

네. 딸이 하나 있구요.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이에요.

Q. 자녀분도 중2병의 시기가 있었나요?

제 아이는 딸이라 그랬는지 시기가 좀 빨리 왔어요. 아동기를 비포 앤 애프터로 분명히 가르며 큰 차이를 보인 게 초등학교 4학년 때였고, 그 때가 엄마인 저나 제 주변을 힘들게 했을 때예요. 5학년까지 감정 기복이 심하게 지속되며 변화가 크다가 6학년 때 잠시 잠잠해졌고, 중 1때 다시 심해졌다가 중 2때부터 부쩍 이전의 현상들이 잦아들더니 중 3엔 완전히 철 들어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어요. 그러니 우리아이는 중2병을 보인 적이 없어요. 딸에게 적용한다면 저는 차라리 ‘10살 병’이라고 부르겠어요. 일찍 학교를 들어가서 제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나이가 딱 10살이었거든요. 한 자리에서 두 자리 수가 된다는 건… 댓가를 크게 지불하고 얻어야 되는 변화인가 봐요. (웃음)

Q. 그 당시 얘기 좀 해주세요. 그때 어떠셨어요?

정말 엄청나게 힘들었어요. 당시엔 아이가 어려 보일 때니 사춘기가 온 거라고 생각하지 못해서 아이이의 행동과 심한 감정 기복을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뒤통수를 맞았다고나 할까요? 게다가 아들들의 경우에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여성들은 긴밀한 관계에서 호르몬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같이 맞춰지는 게 있거든요, 그래서 딸 아이의 기복을 타고 저도 심히 흔들렸어요. 생리주기까지 바뀌는 상황이 왔으니까요. (웃음) 아이 때문에 제 중심이 심하게 흔들렸던 때예요. 같이 널을 뛰었다니까요. 아이를 감당 못해 화도 많이 내고 소리도 지르고 애걸도 해보고 내가 뭘 잘못했구나 싶어서 제 자신을 회초리로 때리기도 하고…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책상 싹슬이도 해봤던 때에요. 별 거 별 거 다 던져 봤어요.

maum interview 02 마음톡톡 마음톡톡

Q. 어땠길래 선생님께서 책상 싹슬이까지 ㅋㅋ

일단, 그게 ‘어느날 갑자기’ 와요. 조금씩 조금씩 쌓여서 변하는게 아니라, 찰나에 질적으로 완전히 변화되어있는 제 아이를 발견하게 되요. 물론 뇌변화를 보여주는 징조들은 있었어요. 3학년 때부터 부쩍 아이가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집에 오면 늘 선생님 누가 이러이러했는데 그건 이러이러하게 볼 때 잘못된 것이 아니냐, 말이 안 되지 않느냐, 자신들에게 이러라 하면서 선생님들이 그러면 그건 모순 아니냐, 뭐 이런 말들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커지고 판단 능력이 생겼다고 기특하게만 여겼는데, 그 잣대가 엄마인 저를 향할 걸 예상하지 못했죠. 그러다 4학년 초에 갑자기 가슴 앞자락이 아프다며 옷을 손가락으로 치켜들고 온 날이 있었어요. 그 때가 시작이었네요. 가슴이 나왔던 것은 아닌데 호르몬 작용으로 인해 젖꼭지 부분이 예민해졌는지 옷에 쓸려 아프다고 한 거예요. 그 때 얼마나 놀랐던지…. 그렇게 일찍 성호르몬이 도는지 제가 몰랐거든요. 그 때부터 아이 몸의 모양새가 바뀌었어요. 갑자기 지방층이 온 몸을 둘러싸 동글동글 해지면서 만져보면 살의 느낌도 달라지고 체취도 달라졌어요. 그리고 뇌에 무슨 칩이라도 새로 낀 것처럼 갑자기 타자의 시선에서 자기를 보기 시작하는 행동을 보였어요. 외모에 신경 쓰기 시작한 것도 그 맘 때예요. 그 전에는 머리 빗는 것도 싫어하더니 아침에 눈 뜨자마자 혼자 머리에 물을 칠해 참빗으로 싹싹 빗으며 거울 앞에 앉아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마치 늘 남들이 자기만 보고 있는 것처럼 시선을 의식했고 행동했어요. 남들 눈에 볼 때 창피하고 쪽팔린 건 자기 만이 아니라 자기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었기 때문에 엄마에 대해서도 조심시키고 창피해 하고 그러는 것들이 많아졌지요. 제가 그 때 늘 아이에게 했던 말이 이런 거예요. “얘야, 사람들이 너만 보고 있는 게 아니야. 다 바쁘고 자기 할 일들이 있는데 어떻게 저들이 너만 보고 있겠니?”였어요. 심리적 변화와 행동 변화는 그것 외에도 많아요. 부모를 힘들게 하는 것은 그 모든 것들과 함께 오는 ‘감정기복’이예요.

Q. 일단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거랑 비슷한 증상이었네요.

근데 그게 안 겪어본 사람은 몰라요. 말도 마세요. 감정의 변화가 어찌나 심하든지…. 아이가 갑자기 유아 때 하던 짓으로 ‘엄마, 엄마’만 찾으며 저한테 들러붙기 시작하는거에요. 사실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이제 엄마한테 안기고 들러붙고 이런 시절은 지난거거든요. 근데 어느 순간에선가부터 저의 품에 다시 파고드는 거에요. 저리가라고 뿌리쳐도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려요. 꼭 안겨 엄마 냄새 맡는다고 킁킁대고 살을 부비고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하지 않아요. 그러면서 코맹맹이 애기 소리도 다시 하고요. 이게 왜 이러나 싶지요. 덩치가 커졌는데 그러면 애기 때와 달리 좀 징그럽고 그래요. (웃음) 그런데 황당한 건 그러다가도 또 갑자기 뭔 감정 변화인지 벌떡 일어나서는 자기방 문을 쾅 닫고 들어가서 절대 안 나와요.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도 대답도 안 하고, 제 방 문을 잠그고는 하루 종일 안 나와요. 얘기해보자고 사정도 하고, 이러면 엄마도 힘들다고 호소도 해보고, 이런 저런 협박도 하고… 다 소용 없어요. 어쩔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내  아이한테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한창 근심 걱정에 휩싸여 있으면, 갑자기 또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와서는 또 품에 안기고 매달려요. 이런 일이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되요. 정말 미칠 노릇이죠.

Q. 선생님은 어떻게 대처하셨어요? 선생님 치료사가 직업이신데, 자기 아이한테도 미술치료를 하셨지 않았을까가 궁금해요 ㅎㅎ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심리치료사들은 자기 감정과 욕구를 갖게 되는 긴밀한 관계의 사람은 치료 대상으로 삼지 않아요. 객관적일 수가 없거든요. 저는 가족들에게는 치료사 다운 자세를 취하지 않아요. 저도 일상은 개인의 삶이고 저 개인의 시간이잖아요. 직업적으로 매사에 대응하고 살면 저도 못 견뎌요. 일단 초등학교 4학년 그 회오리에서는 6개월 만에 터득한 게 있었어요. 아이 상태를 정확히 이해한 뒤에는 제가 제 중심을 다시 잡았어요. 언제 어떻게 제가 영향을 받는지를 알았기 때문에 제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었어요. 중요한 것은 엄마가 영향 받고 힘든 것은 그 엄청난 변화의 시기를 몸소 겪으며 뒤흔들리는 아이의 스트레스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주변의 반응들 때문에라도 이 지나가는 시기에 아이가 보이는 갖가지 현상들을 아이 자신이 자기라고 일치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거에요. 부모나 주변 어른들은 “넌 왜 그러니?” “정말 너란 아이는!” 뭐 이런 말들을 하게 되어 있거든요. 다시 말해 그러한 ‘현상’에 불과한 것들을 아이 성격이라든지 아이의 본질인 것처럼 말하게 되죠. 아이들도 자기들이 그러하다고 여기게 되는데, 절대 그렇지 않고 그렇게 여기면 안 되요. 변화의 시기에 보이는 현상들일 뿐이지 그게 그 아이 본질이나 성격이나 선택 및 의지의 산물이 아니예요. 아이들 내부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변화들이 아이들에게도 의지 밖의 일들이에요. 그들도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고 통제도 안 되고 뭐가 뭔지 모르겠는 중에 이상한 결과들만 있어요. 그 시기를 큰 문제 없이 그냥 지나가게 하는 것, 이게 주변 어른들이 도와줘야 하는 몫이에요. 저는 그렇게 깨달았고, 그래서 그렇게 적응하고 대응했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4학년 하반기 쯤에는 아이한테 올바르게 설명을 해줄 수 있었어요. ‘이건 호르몬이 다량 분비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인거야. 네 잘못도 네 책임도 아니야. 하지만 네 안에서 벌어지는 것이니 너도 그것을 인식할 수는 있어야 해.’ 하구요. 그리고 나서는 호르몬이 휙 돌 때는 ‘어어, 호돌이가 또 온다’하고 같이 불렀죠. 엄마 눈에는 그게 보이더라구요. 파도처럼 살짝 잠잠했다 다시 밀려오는 게요. 그래서 아이에게 계속 알려줬어요. 아이가 자신의 행동을 다 제 탓으로 느끼지 않게 하려구요. 하지만 자기가 내부로 겪으면서 밖으로 빚어내는 현상들을 상호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게요. 사실 이 시기에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요. 아이 홀로 겪어내야 하는 엄청난 혼란과 변화 위에 부모까지 얹는 또 다른 스트레스는 만들지 않는 것.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maum interview 03 마음톡톡 마음톡톡

사춘기 아이들은 뇌 신경이 나뭇가지 죽죽 뻗어나가 듯 폭발하는 나이대에요. 세상의 모든 자극들을 흡수하고 자기 만의 독특한 것들을 만들 수 있는 시기죠. 다만 너무 폭발적이다보니 자기가 제대로 제어하질 못하는 거죠. 너무 많은 자극의 흡수로 인해 자기 정체성에도 혼란을 느끼구요. 이 사실을 인식하지못하고 어른들이 어른의 입장에서만 이상하다고 바라보고, 다그치고, 뭔가를 요청하고, 교육시키려고 하면 더 역효과가 난다고 생각해요.

제 경우는 아이가 제 발로 찾으면 옆에 있어주기는 했지만 특별히 제 쪽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되도록이면 내버려두었어요. 관여도 덜 했고, 필요하다고 하는 게 아니면 참견도 안 하려고 했어요. 그게 쉽지는 않았지만 저도 제가 하는 일들이 있으니 거리를 두기가 가능한 편이었어요. 그리고 그 시기에는 부모보다는 주변의 다른 어른이나 친구들이 더 큰 역할을 하는 때에요. 다행히 제 아이는 친구들이 계속 있었고, 엄마가 아니라서 더 편히 들어주는 친구같은 숙모가 있었어요. 그 숙모 덕에 어른에게 고민을 잘 털어놓으면서 도움을 받았고 친구들과 함께 긴밀한 얘기들을 많이 하면서 그 시기를 큰 문제 없이 지났어요. 저는 최종적인 요구 사항이나 결론만 듣는 부모인 셈이었는데, 그게 더 나았던 것 같아요. 부모로서 최종 결제해줄 일들만 제 몫으로 떨어졌지만 그것을 서운하게 여기지는 않았어요. 아이에 대해 모든 것을 제가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모든 것을 다 참견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어차피 지나갈 시기이고, 저는 제 아이를 믿었고, 아이 주변의 좋은 사람들을 믿었어요. 그러고는 중 2-3 때 사춘기는 끝났어요. 정말로 또 어느날 갑자기 아이가 훅 철이 들었어요. 제가 이렇게 했기 때문에 사춘기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이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을 택하고 대처를 했어도, 아니면 그저 방치했어도 사춘기는 끝났을 테죠. 저희 집 경우는 사춘기가 끝났을 때 뒷수습하고 회복하고 되돌려야 하는 많은 것들을 남기지 않은 경우라고 생각하고, 어찌보면 그게 최선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나가야 하는 것을 지나가게 하는 것, 지나가는 중에 스스로 이미 많은 것들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 이상을 더 겪으라고 외부에서 압박을 주거나 스트레스를 얹지는 않는 것. 이게 제 경우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인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