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RFS 도입에 대한 제언
최근 주요 일간지와 전문지에서는 신재생 연료에 대한 뉴스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신재생 연료 혼합의무화 제도(Renewable Fuel Standard, 이하 RFS)는 정부가 내년부터(경유) 시행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요, RFS는 과연 무엇일까요?
RFS란, 쉽게 설명하면 차량 등의 수송용 연료 공급자(예를 들어, 정유사)로 하여금 자신이 공급하는 연료(예를 들어, 휘발유와 경유)의 일정비율을 재생 연료, 즉 바이오 연료로 혼합하여 공급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이미 유럽, 미국 등 선진국들에서는 기후변화에 대처하여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석유와 석탄 등 화석 연료의 고갈에 대비하여 에너지원을 다양화하고 있는데요, 이와 더불어 자국의 농촌 발전을 위해 오래전부터 RFS를 도입하여 시행해 오고 있습니다. 국내 역시 2010년부터 산업통상자원부에서 ① 202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BAU대비 30% 감축 목표 달성, ② 에너지 안보, ③ 녹색산업 육성 차원에서 도입을 준비해왔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발주로 연구했던 한국석유관리원이 올 2월 공청회에서 발표한 신재생연료 혼합의무화 제도의 기본 골자는 1단계로 2014년에 바이오 디젤 혼합을 의무화하고, 이후 2017년부터 바이오 에탄올 혼합을 의무화하면서 바이오 연료의 보급을 점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4월, RFS법안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법안 소위에서 통과되었습니다. 주요 내용으로는 ① RFS제도 시행을 2년간 유예, ② 유예기간 동안 바이오 디젤 의무 혼합은 신재생에너지법 고시로 운영, ③ 시행령에 따라 연차별 혼합 비율 규정, ④ 바이오 디젤 이외의 신재생 연료 도입 및 혼합 비율 상향 등의 주요 사항은 사전 국회에 보고하는 것으로 한다 등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바이오 에탄올이 혼합 대상 연료에서 당분간 배제되고 시행을 2년간 유예하는 등의 내용에서 보듯이 실제로 이 제도는 국내외적으로 끊임없이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주요 이해관계자들 간 논의되는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온실가스 감축, 지속가능성 등 RFS 제도 도입의 가장 큰 목표인 기후변화 대처 측면에서 논란이 되는 몇 가지 이슈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이오 연료와 지속가능성
최근까지 바이오 연료는 세계 수송용 연료 소비의 약 1.8%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바이오 연료 생산량 중 80%가 에탄올, 바이오 디젤은 2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에탄올은 미국과 브라질이 전 세계 생산량의 86%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현재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 소재로서 곡물류를 탈피하여 폐목질 등으로 다양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은 기술적인 한계로 바이오 연료 생산에는 주로 곡물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필자는 바이오 에너지가 지역사회 경제활성과 올바른 조건에서의 지역개발촉진으로 화석연료의 지속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이오 에너지 개발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신중한 계획수립 및 이행, 그리고 환경,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모니터링이 중요합니다.
최근 국제사회의 동향은 환경, 사회,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하며 다음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바이오 에너지에 한해 지지를 표하고 있습니다.
첫째, 바이오 연료는 온실가스 상쇄와 에너지 생산에 있어 화석연료보다 이점이 있어야 합니다.
바이오 연료의 온실가스 및 에너지 상쇄 효과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특정한 농작물은 보다 더 효율적인 결과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농작물 선정, 토양 만이 주요 결정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용지 변경, 농법, 부산물 및 저탄소 에너지원 사용, 최종 에너지 사용 등도 온실가스 상쇄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연구된 최근의 많은 보고서들이 곡물기반 1세대 바이오 연료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독일 국가학술아카데미는 바이오 연료가 환경에 긍정적 역할을 미치기는커녕 오히려 환경을 파괴하고 바이오 연료를 더 이상 확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둘째, 바이오 연료 정책의 이행은 식량 안보를 고려해야하며, 식량 확보권을 위협하지 않아야 합니다.
바이오 연료의 수요증가는 식량 가격을 자주 요동치게 했습니다. 이는 잘못된 정부의 보조금 등 바이오 연료 정책이 식량 시장의 투기를 촉발하여 식량 가격변동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지구정책연구소(Earth Policy Institute)의 레스터 브라운 소장은 오래전부터 미국이 옥수수를 바이오 에탄올로 사용함으로써 곡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고 강력한 비판을 제기해왔습니다.
지난해 미국의 57년 만의 극심한 가뭄으로 옥수수 작황이 좋지 않아 전 세계 곡물가가 급등하자 UN 식량농업기구(FAO), 세계식량프로그램(WFP)이 바이오 에탄올 의무생산 중단을 요청한 바 있습니다. 한국 정부 역시 G20정상들에게 서한을 통해 곡물의 바이오 연료 정책의 수정을 요청했습니다. 지난 2월 국내 사료협회와 축산협회가 정부의 RFS제도 도입 반대 성명서를 내며 강력하게 반대한 이유도 모두 같은 맥락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이오 에너지 생산시설 조성시, 주요 탄소저장소이거나 보존가치가 있는 자연생태계의 무분별한 개발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세계적인 바이오 연료 보급확대와 동시에 열대우림의 파괴, 생물 다양성 훼손의 부작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31일 자 로이터 뉴스는 ‘팜유가 지구온난화를 가속시킨다.’ 고 전했는데요, 팜유의 80 % 이상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매년 그리스 크기의 지역이 팜유 농장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태계 파괴는 생태계 표본 손실, 서식지 복원력 상실 및 종 다양성 저하, 토양체계 변화와 온실가스배출 증가 등의 중대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유럽연합, 미국 등에서는 바이오 연료의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전주기 분석(LCA)을 바탕으로 온실가스 감축은 물론 식량과의 경합성까지 고려한 지속가능성 기준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습니다.
국내 RFS 도입에 대한 제언
그렇다면 국내에서 시행하려는 제도에는 지속가능성 기준이 마련되어 있을까요? 불행히도 아직 없고, 이제 만들겠다는 입장입니다. 제도 시행과 동시에…
최소한 국제사회의 동향에 맞추어 지속가능성 기준을 마련하고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 맞는 수순입니다. 사실 RFS 제도 도입의 가장 큰 이해당사자는 매일 더 싼 주유소를 찾아 다니는 소비자일 것입니다. 이 제도는 신재생 연료 혼합 ‘의무화’ 이기에 의무자인 정유사는 국내에서 원료 수급을 못하니 미 이행 시 부과되는 과징금을 막기 위해 다시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떠넘겨질 것입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바이오 에탄올을 휘발유에 5% 의무혼합을 하는 경우 휘발유의 소비자가격은 리터당 31원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고, 바이오 디젤을 경유에 4% 의무혼합을 하는 경우 경유의 소비자가격은 리터당 35원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에너지 전량을 수입하고 있는데 이제는 몬산토, 카길과 같은 전세계 곡물가를 좌지우지하는 거대 곡물기업과 해외 농민에게까지 우리 국민들이 돈을 지불하게 되는 것입니다.
RFS로 인해 온실가스 감축에 도움이 되는지 불확실하고 곡물가 상승으로 인해 식탁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기름값까지 오른다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합니다.
국내 상황을 고려하여 혼합 ‘의무화’를 하지 않는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혼합 비율을 정하지 않고 국내에서 생산되는 바이오 연료의 상황을 고려하여 이의 생산량을 기준으로 일본과 같이 혼합 총량제로 실시하는 등 유연하고 점진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의 보조금이나 조세 지원을 통해 국내산 바이오 연료 사용에 대한 인센티브 정책도 필요합니다.
또한 바이오 에너지의 국내 생산 기반을 확충하고 연구개발 지원을 통하여 실용화 기술을 확보하는데 우선적으로 노력해야만 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온실가스 감축, 에너지 안보, 녹색산업 육성 등 애초의 세웠던 목표에 부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부는 선진국들이 겪었던 문제점들을 되짚으며 국내에 적합한 바이오 에너지 정책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