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수요관리, 그 본질과 핵심수단에 대한 소고
덜 쓰면서도 국가경쟁력과 삶의 편의를 유지하다.
6월 초에 찾아 온 이른 더위. 전기요금도 그렇지만 빠듯한 전력수급을 생각하면 올여름은 어떻게 지내야 하나 벌써부터 걱정이 앞섭니다. 돌발 상황이 발생해 발전소 하나라도 멈추는 날엔 전력예비율 부채를 부쳐가며 아침 저녁 할 것 없이 땀을 뻘뻘 흘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몇 년째 비슷한 패턴이 반복 중입니다. 그나마 올해는 얼음 가득한 팥빙수 가게가 부쩍 눈에 띠어 위안을 받습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최종에너지 소비량은 연평균 2.8%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중 산업부문 비중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로 현재 60%를 초과한 상태입니다.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는 에너지 다소비 산업이 한 몫하고 있습니다. 반면, 가정•상업•공공부문과 수송부문의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때 전력소비량은 연평균 5.7%로 더 빠르게 늘어나고 있죠.
최대전력의 경우는 기본부하와 비교할 때 산업용 수요비중은 감소하고 일반용 수요비중은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산업구조를 바꾸거나 산업계의 생산능력을 제한하지 않는 한 전력수요를 줄이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정부는 2014년 설비예비율 19.0%를 기점으로 2019년 37.7%까지 큰 증가세를 보이다가 2027년까지 30%대로 유지될 것으로 가정했습니다. 이는 석탄과 LNG 설비는 6차 전력수급계획대로, 원전은 수급계획에 포함된 8.6GW 외에 5GW의 설비가 추가로 건설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현재 진행상황과 사회적 여건을 고려할 때 건설이 지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발전설비는 계획과 승인, 건설 과정에 최소한 5년 이상이 소요됩니다.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최소한 5년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전력수급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갖춘 듯합니다.
29%는 2035년 달성하게 될 원전의 설비비중입니다. 이는 영덕과 삼척에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온다는 것을 전제할 때 가능한 수치입니다. 이미 신규부지로 확정 고시되었지만 두 지역 모두 수용성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습니다.
한편, 영덕의 경우 해당 부지의 평균 고도가 80m인데 이는 공사의 어려움을 예고합니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전력계통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신울진-강원-신경기를 잇는 765kv 고압 송전망의 건설 지연은 원전이 제 때 건설된다 하더라도 전력공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는 GDP 성장률과 산업구조 전망을 바탕으로 전력수요를 예측했습니다. 이 때 가정된 GDP 성장률이 2.9%, 탄성치는 0.7입니다. 전력소비 추이는 경제성장에 비례하고, GDP가 3만 불 이하일 경우 GDP 탄성치는 1 이상을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여기서도 전력수급 문제 발생의 여지가 엿보입니다.
정부는 수요관리 중심의 에너지 정책전환을 선언한 바 있습니다. 세제개편과 요금조정, 스마트 그리드와 에너지저장장치(ESS)설치,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BEMS), 가정에너지관리시스템(HEMS) 등의 도입을 수요관리의 주요 수단으로 제시했습니다.
수요관리란 수요 측의 부하를 에너지 절약 측면이나 효율 향상의 관점에서 관리하는 기술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에 쓰여 있습니다. 또한 공급되는 전기 에너지의 계속적인 증가 없이 전기 에너지 공급의 신뢰성을 보장할 수 있고, 전체적인 전기 에너지의 소비 절약을 목적으로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켜야 할 에어컨을 끄거나 가동해야 할 공장을 멈추는 것은 수요관리가 아닙니다. 절약을 바탕으로 하되, 필요한 에너지를 적시에 사용하고 이를 통해 개인의 편의와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수요관리의 본질입니다. 기술은 그래서 수요관리의 핵심 수단입니다. 수요관리는 수요예측이 아니라 정확한 수요산정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이는 어떠한 산업구조를 갖고 갈 것인가가 결정되어야 하며, 국민의 소비패턴도 중요합니다.
그 다음엔 실제 공급능력을 확인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발전설비 용량 뿐 아니라 전력계통의 신뢰도도 뿐만 아니라 안전관리도 고려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기술, 습관으로써가 아니라 원천적으로 절약할 수 있는 기술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만약 기술개발이 필요하다면 가능성과 시기 등을 분석하고, 우선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가격의 적정 수준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가격 조정을 위해 세제개편을 할 수 있고, 다양한 요금제도를 도입할 수 있습니다. 제도는 한 번 만들었다고 해서 그 기능이 지속되는 게 아닙니다. 상황과 여건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손질하고 보강해야 합니다. 정책을 수정하고 제도를 고치는 건 실패가 아니라 당연한 책임입니다.
날아올 전기요금 고지서가 겁나서 에어컨을 켜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원천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쓸 수밖에 없는 산업계가 치솟은 전기요금을 견디지 못해 업종을 전환하도록 하는 것은 낯 뜨거운 수요관리 정책일지 모릅니다.
전기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적게 쓰는 에어컨을 개발하도록 하고 또 이를 보급해 수요를 획기적으로 줄이면서도 시원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것 등 기술개발을 통해 전력계통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최소화하고, 자가발전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를 운용함으로써 산업계의 경쟁력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진짜 수요관리 정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꼭 부족하고 불편해야 수요관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파편적이 아니라 전체를 놓고 통시적으로 다루면 덜 쓰면서도 국가경쟁력과 삶의 편의를 훼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수요관리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올해는 팥빙수 가게도 팥빙수만큼 시원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