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산업의 미래는 암울한가?
코로나19의 영향력, 석유산업도 피해갈 수 없었다
우리나라 석유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종래 석유산업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핵심적인 요소들이 사라지는 데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의한 석유 수요 급감과 유가 폭락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석유산업은 하루 3백만 배럴이 넘는 석유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정제설비 능력을 갖추고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에 이어 세계 5위의 규모다. 석유기업들이 생산한 석유제품은 국내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물론 생산량의 절반가량이 해외에 수출된다. 석유제품은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 품목으로서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1위에서 6위까지의 순위에서 오르내렸다.
이처럼 석유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석유기업들의 효율적인 경영과 더불어 정부의 지원과 경쟁 촉진 정책에 기인한 바 클 것이다.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성장의 원동력은 수요의 증가, 즉 내수 증가에 이은 해외 수입 수요 증가인 것으로 보인다. 국내 석유 수요는 외환위기 이전 10년(1987~1997년) 동안 연평균 14.2% 증가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증가세를 보였다. 내수 증가와 그에 따른 내수 규모의 확대는 석유기업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설과 기술 개발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를 가능케 하여 석유산업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했다.
국내 석유산업 위기를 불러온 요인들
국내 석유 수요 증가세는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둔화돼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의 연평균 증가율이 1.3%에 그쳤다.
다행히 2000년대와 2010년대에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중국을 중심으로 해외 수입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내수 둔화로 인한 문제를 해소할 수 있었다. 중국의 정제설비 능력이 빠르게 증가하는 자국 내 수요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석유제품 수출 대상국은 수십 개에 이르지만, 지난 20년 동안 중국이 우리나라 전체 석유제품 수출량의 21.4%를 수입했다. 그러나 최대 석유제품 수출처였던 중국도 이제는 정제설비 능력이 내수를 초과해 석유제품의 순 수출 국가가 됐다. 석유제품의 생산과 수출 등 하류부문 위주로 성장해 온 국내 석유산업에서 내수의 정체와 인근 국가의 수입 수요 감소는 위기의 요인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가 초래한 석유산업의 국제적 위기
올해 들어서는 예상치 못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석유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17년부터 감산을 추진해왔던 OPEC과 비 OPEC의 러시아 등 이른바 OPEC+ 산유국들의 추가 감산 논의가 실패하고 감산 공조체제가 와해되면서 공급마저 급증하고 있다. 국제 원유 가격은 폭락세를 보이며, 두바이유 기준으로 3월 19일 배럴당 25.8달러를 기록해, 올 최고가격인 1월 6일의 배럴당 69.7 달러에 비해 60% 넘게 하락했다. 원유 가격 하락이 감산 공조체제 와해로 사우디와 러시아가 벌이는 시장점유율 확보 경쟁 등 공급 측 요인에 의해서만 비롯된 것이라면, 국제 석유시장의 정제마진은 상승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석유제품 가격의 하락 폭보다 원유가격의 하락 폭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원유가격 하락은 수요 측 요인을 강하게 동반하고 있으므로, 지난해부터 석유제품 공급 과잉으로 축소되기 시작한 국제 석유 시장의 정제마진은 올해 더욱더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석유기업들은 내수와 수출 판매량 감소와 함께 정제마진까지 축소돼 적자가 불가피한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피크 석유 수요 시점을 둘러싼 논쟁
여기에 더해, 최근 몇 년 동안 세계 석유 수요가 정점에 도달하는 ‘피크 석유 수요’의 시점을 두고 논란이 진행 중이다. 노르웨이에 기반을 둔 에너지 및 해운 서비스업체인 DNV GL은 피크 석유 수요 시점을 2023년이라고 주장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와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수요의 증가세는 둔화하지만 2040년 이후까지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메이저 석유회사들 사이에서도 피크 시점에 대한 견해는 다르다. 미국계 메이저인 엑손모빌과 셰브론은 피크 시점이 가시권 밖에 있다고 한다. 반면에 유럽계 메이저인 쉘은 2020년대 후반, BP는 2030년대 후반을 각각 피크 시점으로 예상한다. 어쨌든 피크 석유 수요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든 석유기업들이 직면한 가장 큰 불확실성이라고 볼 수 있다.
변화 양상을 보이는 세계 석유 수요 전망
그러나 우리 석유산업에 닥쳐온 이와 같은 위기와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석유산업의 미래를 암울하게만 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코로나19가 아직은 확산되는 양상이어서 그 심각도와 지속 기간을 예측하기 어렵지만, 급감하는 석유 수요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소멸과 함께 회복될 것이다. IEA는 3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비관적인 시나리오에서도 올 하반기부터 석유 수요가 증가세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했다.
덧붙여 설명하면, 세계 석유 수요는 지난해 하루 80만 배럴 증가에서, 올해는 시나리오에 따라 하루 48만 배럴 증가에 그치거나 하루 73만 배럴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연간 수요가 전년 대비 하루 73만 배럴 감소하는 시나리오에서도, 수요 감소는 1분기와 2분기에 집중되고, 하반기 수요는 전년 동기보다 하루 20만 배럴 정도는 증가한다는 것이다.
피크 석유 수요 시점에 영향을 주는 변수들
피크 석유 수요 시점에 대한 전망도 석유 수요에 영향을 주는 각종 변수들의 전제 조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므로 전제 조건의 적절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평가가 요구된다. 주요 변수로는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의 강도, 가스의 석유 대체 정도, 자동차 연비의 향상 속도, 전기자동차 보급 속도 등일 것이다. 이 중에서 피크 시점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역시 배터리 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전기자동차 보급 속도에 대한 전제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거리 운행에 이용될 수 있는 배터리가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충전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완비되려면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다. 설령 전기자동차 보급이 예상보다 빨라, 자동차용 석유 수요가 감소하기 시작하더라도 선박용과 항공기용 등 다른 수송 부문의 석유 수요는 증가할 것이다. 또한 대체가 곤란한 석유화학 원료용 석유 수요는 장기적으로 꾸준한 증가 추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언젠가 석유 수요가 전체적으로 정점에 이르고, 이후 감소 추세에 접어들겠지만 감소 속도는 빠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세계가 필요로 하는 막대한 양의 석유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기존 유전의 노후화에 따른 신규 유전 개발과 기존 정제설비의 노후화에 따른 신규 정제설비 건설이 계속돼야 할 것이다.
석유산업을 둘러싼 여건 변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고, 국내 석유기업들은 그에 대응한 장기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정제시설 조정, 환경 친화적인 공급,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 등이 대응 전략의 기본 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정제시설 조정은 석유화학 원료인 납사의 비중이 증가하고 육상 수송 연료인 휘발유와 경유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석유제품 수요의 구조 변화에 부응하도록 정제시설을 고도화하는 것을 말한다. 환경 친화적인 공급은 원유도입, 정제, 유통, 소비에 이르는 전 연료주기(fuel cycle)에서 환경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하는 것이다. 지난 2월 BP가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carbon net-zero)’를 선언한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해외 하류 부문 진출을 통한 석유사업의 다각화
마지막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과 관련해서는 국내 석유기업들의 강점을 활용해 해외에서 정제시설을 운영하고 석유제품 저장시설과 유통망에 투자하는 등 해외 하류 부문에 진출할 필요가 있다. 이는 국내 석유제품 수요 구조와 해당 국가의 석유제품 수요 구조 차이를 이용한 수급 조정을 통해 국내 정제시설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또한 기존에 추진해 온 석유화학과 윤활유 사업에 더해 연관 분야로 사업을 더욱 다각화해야 한다. 상호 협력적이고 보완적인 사업들은 핵심 사업인 석유사업에 다양한 이점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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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달석
본 콘텐츠는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부터 기고를 받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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