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와 몰입을 그려낸 예술가들 – ‘생각의 차이’가 ‘결과의 차이’를 낳는다.

창의와 몰입, 예술가, 자기혁명의 알고리즘

자기혁명의 알고리즘 ‘창의와 몰입’ – ‘생각의 차이’가 ‘결과의 차이’를 낳는다

‘창의’란 새로운 것을 생각해 어떤 결과물로 고착시키는 능력과 그것을 실천 및 배양할 수 있는 힘 또는 그 에너지 자체를 가리킵니다. 남다른 형태의 아이디어를 짜내는 기법이나 그 아이디어를 특정대상에 전달할 내용에 대한 전략 툴, 모델 등을 생성해 어떤 ‘결과’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 ‘창의’라는 것이죠. 여기서 결과란 다른 말로 예술가에겐 작품이며, 문화산업적인 측면에선 하나의 기발한 제품이고, 기획자들에겐 특별한 기획이자 소통의 매개일 것입니다.

‘몰입’은 패러다임의 근간이며 자기혁명의 중요한 원소이자, 창의라는 사고의 텃밭을 일구는 일종의 쟁기질과 다름없습니다. 어떤 하나에 깊이 파고듦으로써 목표에 가장 근접하도록 돕는 이것은 양적 개념이 아닌 질(質) 중심의 양태로서, 몰입에 기초해 생성되는 내적인 성과물이 바로 창의요, 외적인 전리품이 혁신입니다.

몰입
창의와 몰입을 통한 생각의 차이가 결과의 차이를 가지고 오게 되는 것이죠 C-:
따라서 창의와 몰입은 흡사 실과 바늘처럼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호 호혜적 관계에 놓여 있으며, 지속적인 몰입이 가능할 때 비로소 창의라는 거푸집도 올곧게 구축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건 예술이야말로 창의와 몰입이 구체적으로 어떤 연관성을 지니는지 효과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1. 창의와 몰입이 빚은 금자탑 ‘예술’

예술은 인식의 한 작용인 의식이 외부조건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질서를 유지한 채 움직일 때 극명한 몰입이 빚어지고, 그 몰입의 끝자락에 창의적 결과물이 놓임을 시각적으로 증명해 보입니다. 또한 예술은 많은 작품들이 생산되는 과정을 통해 천재 예술가들이기에 몰입한 것이 아니라 몰입하였기에 천재가 될 수 있었음을 일러줍니다.


창의와 몰입의 이상적 교류를 만들어낸 영역 ‘예술’

생각이라는 것 자체는 분명 비가시적이지만 고도의 몰입은 확실히 가시적인 세계를 창조하는 아이디어를 건설하고, 인류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되는 결과를 드러낼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술은 창의와 몰입의 이상적 교류를 드러내는 장이자,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힌트를 제공하는 자기혁명의 알고리즘이 녹아 있음을 증좌해 보입니다.

2. 남다른 문제의식과 몰입이 낳은 천재성 ‘살바도르 달리’

일례로 초현실주의의 대가인 스페인의 천재 작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omingo Felipe, 1904~1989)는 소소한 사물에도 상당히 집착하고 몰입한 인물입니다.

그는 수염, 막대기, 서랍, 시계 등, 남들은 별다른 관심조차 두지 않는 사물에 과할 만큼의 남다른 문제의식을 갖거나 심하게 탐닉하는 증세를 갖고 있었는데, 우리에겐 너무나도 평범한 시금치조차 그에겐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형태를 지닌 오브제’였으며, 딱딱한 껍데기를 가진 갑각류 같은 것들에 열광한 나머지 ‘코뿔소 뿔’에 광적으로 파고드는 증상마저 내보였습니다.


스페인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 그는 일상적인 오브제를 남다른 문제의식을 통해 바라보았습니다.

특히 밀레의 작품 ‘만종’ 에 지나치게 몰입한 끝에 불안으로 넘치는 ‘atavism at twilight’라는 그림을 그리더니 나아가 ‘만종’ 속 바구니에 죽은 아기가 들어 있다는 논문을 쓰는 등,과 얽힌 일화는 그의 몰입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냅니다.

그는 자신이 애착을 가진 사물들을 그림 속에 다양하게 투영했습니다. 본래의 용도와는 관계없이 화면 위에 이질적으로 배치했고, 사물과 사물의 기이한 만남을 주선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기법은 초현실주의의 특징 중 하나인 데페이즈망(depaysement)으로 유용되었습니다.

일반적인 것을 거부하고 지나칠 정도의 편집증적 몰입과 과대망상으로 그 자체가 ‘초현실’이었던 달리는 결국 그림 속에 현실을 뛰어 넘는 쉬르(초) 리얼리즘(현실)의 구현을 가능하도록 했고, 광기와 에로틱한 환각 속에 펼쳐지는 이미지의 향연이 구현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달리의 강한 몰입은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초현실주의자들 가운데서도 단연 튀는 존재로 부각시켰으며, 초현실주의를 이끄는 대표적인 창의적 예술가로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기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몰입은 오늘날 그가 천재의 반열에까지 오르는데 작지 않은 분동 역할을 했습니다.

3. 분명한 목표 아래 이룬 점묘법, ‘조르주 쇠라’

창의와 몰입을 말하며 빼놓을 수 없는 또 한명의 작가를 꼽으라면 바로 신인상주의 화가인 ‘조르주 쇠라(Georges Pierre Seurat, 1859~1891)입니다. 그가 일생동안 몰입한 것은 다름 아닌 캔버스에 하나하나 찍었던 ‘점’, 점묘법의 세계였습니다. 사실 쇠라는 19세기 당시 풍미한 과학적인 시각 이론과 색채 이론에 근거해,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빛’을 어떻게 하면 보다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화가의 눈이란 근본적으로 카메라의 렌즈와 동일시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빛을 가시적으로 나타내는 색채의 구성과 배합에 대해 골몰했습니다. 그리고 그 연구의 결과물이 바로 서로 보색 관계인 색채의 점들을 수없이 찍어 형태를 구성하는 ‘점묘법’이었습니다.

화가의 눈이란 카메라의 렌즈와 같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조르주 쇠라, 그의 ‘생각 차이’는 점묘법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색채의 원소들을 해체해 재구성하는 점묘법이야말로 그가 목표로 삼은 ‘빛이 녹아든 순수한 자연의 세계’에 보다 깊숙이 다가갈 수 있는 통로였습니다. 그러나 그 세계는 꽤나 노동집약적인 세계였고, 엄청난 시간을 요하는 세계이기도 했습니다. 5만여 점이 넘는 작품을 남긴 피카소가 하루에도 두 세장 씩 뚝딱 그림을 그렸다면, 쇠라는 한 작품에 수년 간 매달리곤 했습니다.

점묘파라는 이름을 세상에 처음 알린 그의 대표작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 1884~1886)’만 해도 무려 2년 동안을 꼬박 앉아 그려야 할 만큼 고된 체험의 산물이었습니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은 그의 목표는 몰입으로 인해 완성될 수 있었으며, 미술사는 쇠라에게 점묘법이라는 전무후무한 창의적 부산물과 더불어 끝내 지워지지 않을 위대한 명예를 수여했습니다.

4. 몬드리안이 아닌 ‘몬드리안식’은 모두 ‘아류’

네덜란드 태생의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 또한 창의와 몰입의 연관성을 잘 드러내는 작가입니다. 가장 단순한 직선과 원색으로 복잡한 세계를 표현한 몬드리안의 몰입은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창조하는데 있어 매우 의미있는 과정이었습니다.

몬드리안은 신지학(神智學)에 몰입한 나머지 수평선과 수직선,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의 순수 기하학적 형태의 화면 구성과 삼원색을 통해 규칙성과 균형감의 감각적 표현에 일생을 걸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컴포지션(composition)’이라 이름 붙였으며 자기만의 스타일이 이끈 감정 재현의 몰입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포스터, 실내장식, 복식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몬드리안의 사례는 몰입을 통해 획득한 고유의 스타일이 어떻게 창의적일 수 있는지를 넘어,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자적인 지위마저 획득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조차 네모나 직선, 원색의 배열이 들어간 그림만 봐도 대번에 몬드리안을 떠올릴 만큼 그의 기하학적 추상은 강한 인식을 각인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만약 몬드리안이 그린 게 아니라면 그저 몬드리안을 표절하거나 인용한 것 밖에는 되지 않는 위대한 창의를 보여주었다 해도 그르지 않습니다.

이밖에도 예술에 있어 창의와 몰입의 상호적 관계를 나타낸 예는 적지 않습니다. 일생 동안 80여점에 달하는 자화상에 몰입함으로써 예술작품의 수용자가 경험할 수 있는 미적 체험을 넘어, 시대상을 반영하고 화자와 타자 간 경계의 상실을 드러내는 걸작들을 선보인 바로크 시대의 화가 렘브란트를 비롯해 빛과 명암에 천착해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창조한 카라밧지오, 루벤스, 베르메르와 같은 테너브리즘(Tenebrism) 작가들, 평생을 만들고 그리는 것이 아닌 ‘제시’를 통해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린 마르셀 뒤샹, 펼쳐놓는 방식에 몰입함으로써 되레 개별 대상에 대한 몰입을 차단하는 예술형식을 추구한 앤디 워홀, 오로지 드리핑(dripping)기법으로 현대미술과 정면승부를 벌인 액션페인팅의 대가 잭슨 폴록 역시 창의와 몰입과 관련해서 회자되고 있는 인물들입니다.

5. 몰입의 힘과 그것에 이르는 방법

몰입의 힘은 이전엔 없던 새로움, 다시 말해 창의를 부여합니다. 반대로 창의는 몰입이라는 문을 관통할 때 비로소 생명성을 부여받게 됩니다. 하지만 몰입에 이르는 방법과 과정은 저마다 다릅니다. 누구는 작은 사물에서 또 다른 누구는 과학적 배경에 의해, 혹자는 예술 자체의 변화를 통해 그 몰입에 도달하곤 합니다. 다만 이들의 공통점은 분명한 문제의식과 목표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며, 안 될 것이라는 섣부른 단정을 거부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언제나 호기심을 잃지 않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 혹은 할 수 있는 일의 범주 내에서 끊임없이 사고했다는 점, 변화를 꾀하려는 의지가 매우 강했으며 집요했다는 사실도 공통분모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허나 이것이 예술가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나 범인(凡人)인 우리나 기실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단지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실천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가 그 둘 사이를 구분할 뿐입니다.


문제의식과 목표를 가지고 끊임없이 사고하는 것. 이때 우리는 몰입과 창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몰입은 끊임없는 사고와 부단히 새로운 방식을 덧대는 방법으로 일궈진다는 것을 우린 알 수 있습니다. 사고를 물질적 가치로 환원하기 위해 다시 생각을 거듭하는 양태에서 발현된다는 것도 수용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긍정적인 믿음 아래 펼쳐내는 사고의 집요함이야말로 다른 무엇과의 차별요인, 경쟁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이에 몰입방법에 있어 가장 두려워해야할 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며, 이른 포기입니다. 결과가 어떨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생각의 차이’에서 발현되어 ‘결과의 차이’에서 매듭지어 진다는 진리를 서둘러 의심할 이유는 없습니다.

 

GS칼텍스 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