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플래쉬>와 <비긴 어게인>으로 본 결과지향 VS 과정중시
과정도 결과도 모두 삶의 중요한 부분
여러분은 ‘결과’와 ‘과정’ 중 어느 편에 손을 들어주시겠습니까? 과정이 있으니 결과가 도출되게 마련인데 어느 하나를 집어 선택하라는 질문이 어불성설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현실의 작동원리는 조금 다르지 싶습니다. 결과와 과정이 마치 각각 하나의 독립된 요소로 따로 떨어져 있어 늘 선택을 강요 받는 듯한 기분이 드는데요. 과정과 결과의 무게중심을 어디에 더 둘 것인가? 이 두 선택에 관한 흥미로운 해석들은 많은 영화를 통해서 다루어졌습니다.
150만 관객을 모으며 상반기 최고 화제작으로 자리한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위플래쉬>. 그 열풍을 뒷받침 하는 것도 바로 이 결과지향적인 태도에 대한 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천재 드러머가 되기를 갈망하는 학생 앤드류(마일즈 텔러)와 그의 재능을 끌어내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교수 플렛쳐(J.K.시몬스)의 분투. 둘의 관계는 얼핏 꽤 고무적인 관계처럼 보이지만 이 ‘상호교류’가 좀 도를 넘었다 싶은데요. 앤드류는 명문 셰이퍼 음악학교에서 최고의 재즈 연주팀을 지도하는 플렛쳐 교수의 가르침을 받게 되면서 한창 들떠있는데요. 첫 수업 시간부터 살벌함이 도를 넘습니다. 모욕적 언사는 기본, 의자를 집어 던지고, 따귀를 때리기까지 합니다. 이 정도면 당장 소송을 걸어도 무방할 정도의 폭력인데요. 이 모든 게 그가 앤드류를 최고의 드러머로 키우기 위한 교육 방법이었다고 하면 여러분은 납득하시겠습니까?
결과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나탈리 포트먼이 주연한 영화 <블랙 스완>을 지배하는 가치관도 생각해 볼만합니다. 뉴욕 발레단의 니나(나탈리 포트만)는 발레단 안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무용수입니다. 새롭게 각색한 <백조의 호수> 공연을 앞두고 그녀는 ‘백조’와 ‘흑조’ 1인 2역의 주역으로 발탁되는 행운의 주인공이 됩니다. 니나는 ‘누구에게도 뒤처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의욕적으로 이 일에 매달립니다. 하지만 순수하고 우아한 백조 연기로는 단연 최고지만 도발적인 흑조 연기를 하는데는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그녀는 그 중압감에 휩싸입니다. 공연을 총괄하는 감독 토마스(뱅상 카셀)는 그런 니나가 한계를 벗어나게 하기 위해 강압적인 방식도 불사합니다.
최고가 되기 위한 가혹한 채찍질
<블랙 스완>에서 최고의 흑조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감내한다던가 <위플래쉬>의 플렛쳐 교수가 감행한 ‘채찍질(Whiplash)’이 과연 통용될 수 있냐를 판단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무리한 교육이 주는 효과는 명백합니다. 예를 들어 앤드류는 드럼채를 쥔 손에 피가 날 정도로 연습을 하고 피가 난 손에 밴드를 붙입니다. 밴드가 젖은 피로 미끄러져 나가면 다시 밴드를 붙이기를 반복하면서도 연습을 멈추지 않습니다. 최고의 연주자가 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지요. 훈훈한 미담으로 남을 ‘과정’은 결국 이 ‘결과’에는 쓸모없는 부분일 뿐이지요. 이 부분에 관해서 플렛쳐 교수가 명확한 정의를 내립니다.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고 가치없는 말이 ‘그 정도면 잘했어’야”라고 일갈합니다. 과정 중심의 ‘착한’ 가치관, 변명과 타협이 필요한 태도에 명백하게 반기를 들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교육방식은 과격하지만 꽤 용감하게 읽혀지는 부분입니다.
<위플래쉬>나 <블랙 스완> 모두 최상의 결과물을 추구하는 예술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닐까 싶지만 사실 우리사회는 이런 결과지향적인 가치관이 중요한 사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학입시, 취직, 승진, 사업성공 등 돈과 명예라는 ‘보상’을 얻기 위해서 다들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데요. 이 과정이 힘들면 힘들수록 성취했을 때 만족도가 더 극대화된다는 점은 생각해 볼만한 포인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서 찾는 가치
반대로 이런 가치관에서 벗어나 오히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 이들도 적지 않은데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향해서 열심히 노력했다면 비록 최고가 되지 않더라도 혹은 실패하더라도 충분히 칭찬받을 수 있다는 주의입니다. 결과뿐만 아니라 그 과정들도 인생의 소중한 한 부분이라는 의미겠지요. 테마곡 ‘로스트 스타즈’(Lost Stars)의 인기와 더불어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 <비긴 어게인>은 <위플래쉬>나 <블랙 스완>과는 정확히 대척점에 서 있는 가치관을 설파하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댄은 그레타에게 최고가 되기 위해 매진하고, 최고가 되어서야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매순간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 스타 프로듀서가 아니라 이번엔 삶의 태도를 견인해주는 멘토로서 말이지요. 그레타는 남들이 인정하는 음반제작사와의 계약을 하는 대신, 이제 자신의 음악을 표출할 수 있는 통로를 찾아 나섭니다.
메달로 증명되지 않는 삶의 가치
최종 스코어, 승률, 승패가 모든 걸 말해주는 스포츠 분야를 보면 오히려 이런 과정의 가치를 설파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요. 전직 역도선수였던 이지봉(이범수)이 역도 코치가 되어 겪는 감동적인 드라마 <킹콩을 들다>에도 과정을 중요시하는 이런 가치관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영화는 2000년 전국체전에서 15개 금메달 중 14개 금메달과 1개 은메달을 휩쓴 순창여고 역도팀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는데요. 지봉은 88서울올림픽에서 지병이 도져 쓰러지고 선수생활을 끝내고 맙니다. 메달로 실력을 평가받는 올림픽에서의 실패라니, 선수로서 그의 생활도 실패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선수로서의 영예를 모두 내려놓고 나이트 웨이터로 일하던 그가 전 코치의 배려로 일하게 된 곳은 시골 한 여중의 코치입니다. 천진한 시골 소녀들을 지도하면서 그는 좌절하고 다쳤던 마음의 문을 서서히 열게 되는데요. 소녀들에게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금메달에 도전한다. 하지만 동메달을 땄다고 해서 인생이 동메달이 되진 않아. 그렇다고 금메달을 땄다고 인생이 금메달이 되진 않아. 매순간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그 자체가 금메달이야.”라는 가르침을 전달합니다. 실패의 경험을 해봤던 그였기에 결과만을 위해 달려가는 삶이 주는 허무함을 경고했던 것이지요. 스포츠에 비유했지만 결국 그는 제자들이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중요한 인생의 태도를 짚어 준 것입니다.
시작과 똑같은 질문을 다시 한 번 드립니다. 여러분은 ‘결과’와 ‘과정’ 중 어느 편에 손을 들어주시겠습니까? 결과에 매진하는 태도는 모든 걸 다 무시하고 성공만을 위해 달려가는 아집일까요? 혹은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만족하는 삶이 단지 자신의 삶을 합리화하고 안주하기 위한 태도일까요. 여기 소개한 영화들은 그 어떤 것도 삶을 헤쳐 나가는 절대적인 방법이 아님을 알려줍니다. 과정이 결과를 만든다는 확언을 하기에 앞서, 결과와 과정 중 자신이 정말 가치를 두는 삶의 태도를 곰곰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