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추억을 남기는 여행, 고택과의 만남

여행을 부르는 고택과의 만남

 

오랜 시간 속에서의 하루 ‘고택과의 만남’

집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가장 단순하게 보자면 사람이 기거하는 공간일 테고 물질적 가치로 보자면 평생을 바쳐 마련해야 할 애증의 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거기에 시간이 더해진다면, 그것도 십 년 단위가 아니라 백 년 이상의 무게를 견디어낸 집이라면 문득 떠오르는 몇 개의 단어로 집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오래된 집, 고택에는 직접 체험하지 못하면 영원히 알 수 없는 매력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여행의 과정이 아니라 그 목적으로서의 가치 역시 고택에는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들어가기에 앞서, 한옥의 구조에 대해 간단한 정보를 숙지하는 것이 고택을 이해하기 위한 선행조건.

한옥의 구조

한옥은 보통 문간채(행랑채)와 사랑채, 안채로 구분되는데, 사랑채는 남자들이 생활을 하며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었고 안채는 집안의 여자들이 기거하며 살림을 이끌던 공간이었다. 사랑채와 안채는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연결되어 있는 게 일반적인데, 지역 혹은 건축당시 집주인의 의도에 따라 떨어져 있는 곳도 있다.

규모가 있는 사랑채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방이 큰사랑과 작은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존재하고 안채에는 할머니의 상방(건넌방)과 어머니의 안방이 나뉘어 있다. 모든 방과 방 사이에는 대청이 있어 많은 사람이 모여 앉을 수 있다. 대개의 경우 대문과 함께 있는 문간채는 집안 일을 담당하던 사람들의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새롭게 태어난 전통의 모습 – 조견당

새롭게 태어난 전통의 모습 - 조견당
1827년 대들보를 올린 강원도 영월의 조견당

 

동강으로 유명한 영월에도 오래된 집들이 있다. 그리고 제천과 가까운 주천에 위치한 조견당은 그 중 첫손에 꼽힐 만 한 규모와 역사를 지니고 있는 집이다.

1827년에 대들보를 올린 조견당(바로가기)은 한때 집 대부분이 소실되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국군과 북한군이 이 큰집을 번갈아 본부로 삼기도 했을 정도. 그래서 안채의 대청에는 한국전쟁 당시 생긴 총알구멍도 볼 수 있으니 평화롭기 그지없어 보이는 이곳의 상처가 어느 정도였을지는 상상도 가지 않는다.

 

1827년에 대들보를 올린 조견당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뼈대만 남아 있던 사랑채를 새로 짓다시피 개보수를 했는데, 전통 가옥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내부에는 현대적 생활방식에 익숙한 여행객들을 위해 방마다 화장실을 설치해 이용의 편의성을 증대시켰다.

조견당 숙박비는 8만원에서 50만원까지 다양
숙박이 가능한 조견당 숙박비는 8만원에서 50만원까지 다양하다

 

안채는 예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아주 오래된 아늑함이 느껴지는 공간. 마당에 마련된 샤워실과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일에 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충분히 하룻밤을 묵어볼만하다. 각종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으니 방문 전 홈페이지를 확인하자. 숙박료는 선택하는 방에 따라 달라지는데, 8만원에서 50만원까지 다양하다.

 

남도의 넉넉함이 가득한 집 – 곡전재

남도의 넉넉함이 가득한 집 - 곡전재
1910년에 지어진 전라남도 구례군에 위치한 곡전재

지리산 아래 첫 동네 구례의 고택들은 배경으로 하고 있는 산을 닮아서인지 그 품이 넉넉하다. 맑은 물이 흐르는 마당을 품고 있는 곡전재(바로가기)역시 그러한데, 1910년에 지어진 이 집 역시 조견당처럼 부침을 겪었다. 집의 일부가 훼손되기도 했지만 차근차근 복원하고 누각을 새로이 만들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10년에 지어진 전라남도 구례군에 위치한 곡전재

 

뒤로는 작은 대숲이 있고 사랑채와 연결된 누각 옆에는 연못이 조성되어 있어 남도 고택의 풍류룰 즐기는 데에 이보다 더 좋은 장소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특히 집안에는 예전부터 사용하던 전통 생활용품과 장식품들, 농기구들이 있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에 좋은 역할을 한다.

 

고전재 전통 고택이면서도 본격적인 숙박업소의 형태

 

전통 고택이면서도 본격적인 숙박업소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도 곡전재의 특징 중 하나인데, 방 안에 취사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원하는 경우 직접 식사를 준비할 수 있다. 고택의 무겁고 엄격한 이미지에서 한발 떨어져 있는, 친근하고 아늑한 집이다.

 

단정한 선비를 닮은 공간 – 덕산고택

단정한 선비를 닮은 공간 – 덕산고택
영조 32년에 지어진 영주 덕산고택

영주는 선비의 고장이라 불리는 곳. 퇴계 이황에 의해 나라로부터 공인받은 최초의 사학인 소수서원이 영주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데, 그런 역사 덕분인지 고택들 역시 단정하고 기품이 있다. 영조 32년(1756년)에 지어진 덕산고택은 바로 그러한 풍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영조 32년에 지어진 영주 덕산고택
덕산고택 숙박문의 : 054-637-4529

앞마당에는 고택들 중 흔치 않게 잔디가 곱게 깔려 있고 그 뒤로 약 300년이 된 집이 당당하게 서 있다. 아무리 봐도 그만큼의 세월이 쌓인 것 같지 않은 청아한 모습이다. 정면에 보이는 사랑채의 왼편으로는 안채로 향하는 문이 있는데, 서울에서 4남매를 남부끄럽지 않게 키워낸 노부부의 생활공간이다. 물론 숙박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니 사전에 문의하도록 하자.

 

영주여행 덕산 고택

 

물론 이곳 역시 한옥에서 가장 불편한 부분인 화장실과 샤워실을 현대식으로 바꾸었기에 지내는 데에 불편함이 없다. 아침 식사로 간단하지만 정성이 담긴 다과를 즐길 수 있는 것 역시 덕산고택의 장점 중 하나다. 다만 영주댐이 건설되며 현재 덕산고택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은 수몰될 예정이라는 점은 너무나 아쉽다. 현재의 건물은 새로운 고택촌으로 이건될 예정이라고 하지만 집은 건물만큼이나 위치도 중요한 법이기에 이곳의 진면목을 느끼려면 더 늦지 않게 계획을 잡는 게 좋겠다.

한옥, 그 중에서도 고택들은 오랜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집마다 역사가 다르며 분위기도 다르다. 단순한 숙박업소로 인식하기보다는 전통문화가 가장 잘 살아 있는 곳이라 생각하며 하룻밤을 보낸다면 그 어느 곳에서보다 풍성한 추억이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