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영웅 최명길, 기득권을 던져버리다
명분론으로 똘똘 뭉친 조선 조정에서 홀로 자기주장을 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조, 병자호란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고 군주와 백성의 생사가 백척간두에 달려 있을 때, 조선의 사대부들 대부분은 오랑캐인 청나라와는 화친하지 못한다며 죽음으로 싸우자고 주장하고 있었고 최명길은 단신으로 이를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그 바람에 최명길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아 만신창이가 되었고 역적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는 사실 가만히 있으면 자기 가문이나 권세가의 자리에서 어려움을 겪을 상황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최명길은 인조반정이 일어나기 전, 반정의 중요한 일정을 잡고 모사를 꾸미던 주역이었습니다. 그런 공로로 최명길은 정사공신 1등으로 봉해졌고 후일 이조 정랑, 참의, 참판으로 승진하게 되었으니 그의 권세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분연히 일어나 척화론을 주장하는 대부분의 공신과 신료들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 동안 쌓아온 명예와 부와 지도력이 일순간에 초토화될 것이 뻔한 데도 기득권을 다 던져버리고 주화론자가 되어 인조에게 청나라와 화친을 맺으라고 요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사간원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인조 앞에서 그를 탄핵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라를 마음대로 처단하고 화의를 자기 임무로 삼으며 군주의 존엄함을 굽혀 개나 양 같은 무리를 가까이 하였으니 쫓아내야 마땅합니다.”
굴욕과 수치감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다
1636년 청 태종은 스스로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수도 선양을 떠나, 12월 9일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 왔습니다. 14일에는 이미 개성을 통과하고 도성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강화로 피난하려다 청군에게 길이 막혀 남한산성으로 급히 들어간 인조는 주화와 척화를 주장하는 신하들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순간을 맞고 있었습니다.
성을 지키는 자는 겨우 1만도 채 못 되는 숫자인데 적의 숫자는 부지기수였고 날랜 기병과 뛰어난 정병들로 조선군은 초토화되어 성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조정신료들은 청나라와 싸워 죽자는 이론이 대세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내다보고 큰 그림을 읽어낸 최명길은 인조에게 상소를 올려 자신의 주장을 분명히 전달했습니다.
“일부 신하들은 화친을 맺어 국가를 보존하는 것보다 차라리 의를 지켜 망하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만,
이것은 신하가 절개를 지키는데 쓰는 말입니다. 종묘와 사직의 존망이 일개 개인의 일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내가 비난 받는 것보다 나라가 통째 흔들려 없어지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사대부들의 체통이 깎이고 의리가 손상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백성들의 안정된 삶과 나라의 평강이다.’ 이것이 최명길의 일편단심이었습니다.
단기필마로 내외의 적과 상대하다
그는 단기로 청나라 군사 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왜 화친을 어기고 전쟁을 일으켰는지를 따지는 한편 청군의 요구수준을 약화시키는 협상을 벌였습니다. 그 사이 시간을 번 인조는 소현세자와 신료들을 데리고 간신히 남한산성으로 피신하게 되었으나 결국 더 버티지 못하고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며 치욕의 항복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더 이상의 치욕을 당하지 않은 것만도 최명길의 협상력 덕분이었습니다.
인조의 항복 이후 청군이 물러나자 최명길은 이조판서와 우의정으로 일하면서 흐트러진 국내 정치를 일신하고 국력을 키우는 데 앞장섰고, 청군의 포로가 되어 연경으로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풀려나 귀국한 후에도 그는 조금도 쉬지 않고 국난 극복에 앞장섰습니다.
청나라가 인조 15년 4월 조선군의 원병을 요청하였을 때 이의 불가를 주장하여 관철시켰으며 잡혀간 수많은 조선의 백성과 포로들을 귀환시켰습니다. 그는 청군에 끌려갔던 부녀들이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을 것을 염려해 가족관계를 계속 유지하도록 주장, 깨어진 가정을 회복시키는 놀라운 일도 실천해 냈습니다. 오로지 백성들의 평온한 삶을 구현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는 그 였습니다.
시대 흐름을 읽어낸 진정한 선각자
이처럼 최명길은 조선 사대부의 허망한 명분론을 깨어버린 현실 정치가로 세상을 똑바로 볼 줄 아는 당시에 몇 안되는 선각자였습니다. “ 화살은 내게 돌려라. 백성을 살리는 것이 내 할 일이다.” 그렇게 악역을 자처했던 한 참모 덕분에 조선은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군주인 인조는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지만 나라와 백성들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는 주화론으로 자신의 정치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고 온갖 비난을 뒤집어썼습니다. 하지만 나라는 다시 살릴 수 있었습니다.
300년이 지난 지금, 요즘의 리더들은 조직과 보스를 섬김에 있어 어떤 자세로 일하고 있습니까? 온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 때 최명길처럼 아무도 떠맡지 않는 악역을 스스로 맡아 위기에 처한 나라와 국민들을 구해낼 누란지위(累卵之危)의 진정한 구국 영웅을 고대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