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극복해내는 한마디의 힘 – 백범 김구, 타이타닉에 타다.

역사에서 배우다10 – 백범 김구, 타이타닉에타다

시절이‘ 수상’하네요, 위기가 임박했습니다. 아니 이미 위기라는 말이 무성합니다. 신문 방송의 헤드라인은 하루가 멀다 하고 놀라운 뉴스를 쏟아냅니다. IMF 당시보다 더 심각하다거나 재앙이 닥쳤다는 말이 결코 과장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경제전문가라는 사람들도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입니다.

침몰하는 타이타닉 앞에선 김구

이런 거대하고, 끝이 안 보이고, 대책이 서지 않는 위기를 가리켜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 사상가, 지그문트 바우만은 ‘타이타닉’에 비유했습니다. 세계 최대의 규모와 초현대식 시설을 자랑하며 항해에 나섰으나, 예기치 못한 빙산과의 충돌로 어이없이 침몰해 버린 타이타닉호. 그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기도 했었죠.

바우만은 “우리는 모두 빙산이 다가오고 있음을 짐작하고 있다. 어딘가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결국 우리와 충돌하고, 우리를 물 밑으로 가라앉힐 것이다.”라고 암울한 경고를 합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 바로 여기 한국 땅에서 어쩌면 ‘타이타닉’과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아니라, 바로 김구였습니다.

당시(1896년 3월) 그는 열대여섯 되는 손님들과 더불어, 대동강을 따라 치하포로 가는 나룻배에 몸을 싣고 있었습니다. 이제 추위가 조금씩 풀리려나 싶던 대동강에는 얼음덩이가 떠다녔죠. 타이타닉을 침몰시킨 빙산에는 비할 것은 못되지만, 역시 타이타닉에 댈 것이 아닌 나룻배를 위협하기엔 충분했었죠. 바로 그 얼음덩이 중 하나가 나룻배와 정면으로 충돌한 것입니다.

미처 손써볼 틈도 없이, 뒤이어 제2, 제3의 얼음덩이가 연달아 부딪쳐왔습니다. 그리고 배를 포위하듯 사방에서 조여오기 시작했습니다. 으드득 드득. 십수 명을 태운 나룻배는 강 한가운데에서 얼음덩이에 밀려 급속도로 기울어져 갔습니다. 도망치려고 해도, 얼음처럼 차갑고 바다처럼 넓은 대동강 강물은 수영에 아무리 능숙한 사람이라도 헤쳐나갈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룻배, 얼음, 침몰, 김구, 이야기
조그마한 나룻배에게는 대동강의 얼음덩이는 큰 위험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사색이 되었습니다. 아낙네들은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고, 노련한 뱃사공도 “이젠 틀렸어. 말로만 듣던 일이 이렇게 일어나는군.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라고 소리치며 노를 아예 집어던졌습니다. 점점 가라앉는 나룻배는 하느님이나 부처님을 부르며 기도하는 소리, 엄마! 엄마! 하며 우는 소리 등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야말로 절망을 그림으로 그린 듯한 광경이었죠.

얼음덩이 장애물 무너뜨리기

이때 벌떡 일어선 젊은이가 있었는데, 바로 갓 스물이었던 김구였습니다.

“모두들 울고만 있을 겁니까?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습니다. 울고 있을 틈이 있다면 모두 힘을 합쳐서
얼음덩이를 밀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봐, 젊은이! 누군 죽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줄 아나? 자네도 눈이 있으면 좀 봐. 이게 어디 사람의 힘으로 될 일인가?
그렇게 힘이 세다면 자네 혼자 해 보든가.”

“저 혼자 힘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도 안 될지 모르죠. 하지만 혹시 될지도 모르잖습니까?
설령 끝내 안 된다고 쳐도, 그 때는 운동 한 번 신나게 했다 치면 되죠! 안 그렇습니까?”

운동? 당장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운동이라니? 사람들은 기가 찼습니다. 하지만 기가 차다 보니 그만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웃음은 점점 커졌고, 왠지 이 겁 없는 젊은이의 말대로, 죽을 때는 죽더라도 한번 힘이나 써 보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김구와 열 명 가량의 남자들, 끝내는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달려들어 한 마음으로, 죽을 힘을 다 해서 얼음덩이에 몸을 부딪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의 사투 끝에 마침내 얼음 장벽의 일각이 무너졌고, 배는 무사히 빠져 나와 강변에 닿았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나온 사람들의 환희와 안도! 기뻐 날뛰는 사람들의 얼굴을 달빛이 비춰주고 있었습니다.

캄캄한 위기 속에도 빛은 있다

김구와 같이 절망적인 상황에서“그러지 말고 모두 힘을 내자”는 말은 사실 누구나 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힘내자고만 하면, 그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먹구름처럼 덮고 있는 절망과 패배주의에 힘없이 밀려 버립니다. 김구는 여기에 “운동이나 하는 셈 치자”는 말로 그 구름을 헤치고 희망의 서광이 비치게끔 했습니다.

희망이 안 보이는 아니 볼 마음이 들지 않는 상황에서 해학과 여유,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다시 한 번 노력해 볼 촉진제로 작용한 것입니다. 대동강에서 살아나온 김구는 다음 목적지인 치하포로 갔으며, 거기에서 일본인 첩자 쓰치다를 척살함으로써 일개 무명의 젊은이에서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독립투사로 탈바꿈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백범 김구의 위대한 독립운동사는 여기서 비로소 시작되었습니다.

해학과 여유, 말
누구나 할 수 있는 말보다는 그 안에 해학과 여유를 넣어 더욱 힘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것은 대동강의 얼음덩이를 운동 삼아 밀어내 보자는, 자기 자신과 여러 사람들을 구해낸 생각과 행동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 냉정한 판단력을 잃고, 지나치게 비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깊은 산이나 정글에서 헤매다가 결국 힘이 다하여 쓰러지는 곳은 막상 조금만 더 가면 인가가 나오는 곳이 많다고 하지 않습니까?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우리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위기에 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레 자포자기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해도 안 될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안 해 볼 건 또 뭔가요? 운동이라도 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심각한 상황에도 오히려 웃음을 잃지 않고, 여유를 찾으려 노력해 봅시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위기에 맞선다면, 아무리 온 세상이 캄캄한 위기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이 보일 것입니다.

GS칼텍스 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