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전통주의 역사를 알아보자! 전국 전통주 기행

 

전국의 전통주를 한눈에! 지역별 전통주 역사 기행

우리나라 전통주 가운데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 명맥이 끊이지 않고 살아남은 여러 가지 전통주가 더러 있습니다. 그 술들 가운데 오늘은 각 지방별로 이름난 술들을 찾아보고, 그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각 지방에서 이름난 술들은 대부분 그 지방의 특산물을 가지고 빚은 술들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술들의 이름을 잘 기억해 두셨다가 혹여 그 지방으로 여행을 가시던가, 지날 일이 있을 때는 꼭 짬을 내어 그 지방의 술들을 음미해 보는 것도 과히 나쁘지는 않을 터. 저는 타 지방을 가게 되었을 때 일부러 그 지방의 술들이 어떤 것이 있는가 살펴 보고 그 지방에 가서는 그 술을 반드시 마셔 보는 게 취미 아닌 취미가 된지 오래입니다. 또한 그 술과 관련하여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바로 우리 조상님네 들의 삶과 애환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울 경기지방의 술

우리 전통주의 모든 근원은 궁궐의 수라간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옛날 궁중에서 빚는 술의 제조 방법이 여러 경로를 통하여 양반 사대부 집안으로 전수되고 이것은 또한 민간에 퍼지게 되었으며 그 지방의 특산품과 결합한 케이스가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구중궁궐에서 전문적으로 술을 빚는 기관은 양온서(良醞署)라고 하는 곳입니다.

고려 문종 임금 때 설치되었다고 하는데 ‘장례서’, ‘사온서’로 불려 졌으며 조선조에도 이 관청은 계속하여 존재하였습니다. 주로 발효에 관계되는 술과 음식을 관장한 것으로 보여지며 이곳에서 만들어진 술을 향온주라고 합니다. 바로 임금님께서 드시던 어주(御酒)인 셈입니다. 당연히 서울에서 만들어진 서울의 술입니다. 궁중에서 술을 바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인 양온서에서 어의(御醫)들이 직접 빚었다는 이 술은 궁중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으며 외국 사신을 접대하거나 국가의 큰 행사에만 사용되었습니다.

술 원료로 차가운 녹두를 사용하기 때문에 뜨겁게 발효시키는 일반 술과 달리 제조에만 6개월이 넘게 걸리며 무려 덧술을 12번까지 하여 청주로 술을 뜨는데 그 맛이 깊고 향기롭기가 이루 비할 데가 없다고 합니다. 지금도 북촌 한옥마을에서는 향온주를 빚는 행사가 설 전후로 있다고 하니 바로 요즈음이 아닐까 합니다.

서울 인근의 술에는 남한산성 소주가 있습니다. 지난 번 글에서 자세하게 언급하였지만 남한산성 소주는 부드럽고 잔 기운이 오래 남는 한국의 대표적인 증류주입니다. 남한산성은 전쟁에 대비하여 임금의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한 행궁으로서 산성 안에는 일천 여 호의 촌락을 이룬 자족 도시였습니다. 유사시에는 한양의 사대부와 부자들이 피난하기 위한 피난처로 마련된 만큼 시설이 방대하고 호화로워 비록 산성이라 하나 궁중 음식을 닮은 맛있는 음식과 술이 넘치는 소도시였습니다.

따라서 자연히 유명한 술이 있게 되었으며 술의 향기는 동문 밖 불광리까지 퍼질 정도로 성행하였다고 합니다. 현재는 광주시 실촌면 중열리의 강신만씨에게 빚는 법이 전해져 전수되었다가 그의 둘째 아들 강석필씨가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 13호가 되었으며 현재는 셋째 아들 강환구씨를 이어 강순구씨가 맥을 잇고 있습니다. 남한산성 소주는 제주 성읍 마을의 오메기 술, 청주 상당산성의 대추술, 담양 금성산성의 추성주, 부산 금정산성의 토산주(산성 막걸리) 등과 함께 산성을 중심으로 발달해온 몇 안 되는 전통주 가운데 하나랍니다. 이곳 양조장에서는 참살이 탁주도 제조하고 있습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지방에서는 김포의 문배주를 꼽을 수가 있습니다. 좁쌀과 수수를 원료로 하여 술을 빚는데 이름이 문배주라 하여 문배가 들어간 줄 아는 사람이 있는데 사실은 문배(맛이 뛰어난 우리나라 재래종 돌배)는 조금도 넣지 않고 순수 곡식으로만 빚은 것입니다. 다만 그 향에서 문배 냄새가 난다고 하여 문배주라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문배주는 고려 왕건 시대부터 제조되어 내려왔으며 함경도 지방의 민속 토속주였으나 평양지방으로 전래되고 원료는 평양지방에서 재배가 많이 되는 찰수수와 메조로 빚습니다. 문배주는 평양에서 양조장을 하던 이경찬옹이 월남하면서 경기도 김포에 정착하여 술을 빚으면서 김포의 문배주가 되었으며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숙취가 없고 향이 좋으며 부드러워 양반계층에서 애용했던 고급술로 대동강 물을 사용한 평양지방의 술로 널리 알려져 있었으나 이제는 경기도 김포의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로서 국가 주요 행사에 건배주로 애용 되었습니다.

인천의 옛 이름은 미추홀(백제) – 매소홀(고구려) – 소성현(신라) – 인주(고려) – 경원군(고려) – 인천(조선) – 부천군(일제) – 인천직할시-인천광역시로 변천되었습니다. 따라서 인천에서 가장 널리 마시는 막걸리 이름이 소성주인 까닭을 이제는 아시겠지요? ^^ 그런데 이런 인천 땅에도 아주 맛있는 술이 존재한답니다. 이름마저도 심상치 않은 칠선주(七仙酒)입니다.

칠선주는 규합총서, 산림경제, 임원십육지, 양주방 등에 그 기록이 전해지는데 1777년 조선조 22대 정조 원년에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20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술이랍니다. 오늘날의 칠선주는 인주지방(인천의 옛 이름)의 궁중 진상품이었으며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에 살고 있는 이종희씨가 그 맛과 효능을 재현하는데 성공하였다고 합니다. 칠선주의 칠선이란? 인삼, 구기자, 산수유, 사삼, 당귀, 갈근, 감초의 일곱 가지 약재가 들어간다고 하여 칠선주라고 이름이 붙었다고 하며 신선 仙자가 붙은 것은 가히 이 술을 마시면 보양과 장수를 꾀해 불로장수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정월 첫 해일에 밑술을 담아 12일 마다 덧술을 쳐서 삼해주라고 불리는 명주가 또한 경기, 인천지방의 술이었습니다. 삼해주는 가장 추운 겨울에 빚는 고로 자연히 저온 숙성 발효가 되며 이렇게 빚은 술은 그 맛과 향이 뛰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삼해주 한 잔을 입에 머금으면 그 입술이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니 혹자는 순지주라 칭하기도 합니다. (입술 순, 핥을 지) 즉 한잔을 마시면 자연히 입술을 핥지 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삼해주는 인천시 연수구 문학산에도 그 전설이 있을 정도로 인천 인근에서 빚어지던 술인데 어찌된 일인지 서울의 술로서 등재가 되어 있으니 아마도 그 명성이 높아 영역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인지, 아니면 술 빚는 명인이 거주지를 옮겨 가는 바람에 자연히 서울의 술로 되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이 밖에도 경기도 군포시 당정의 옥로주가 있는데 이 옥로주는 유씨 가문에서 빚어 마시던 가양주로서 증류할 때 증기가 액화 되면서 마치 옥구슬 같은 이슬방울이 떨어져 내린다 하여 옥로주라고 불렀답니다. 당정 옥로주는 율무와 멥쌀을 주원료로 하여 빚은 율무 술을 증류하여 만든 소주로서 옥로주는 경기도 군포 당정동의 오봉산 줄기를 타고 내려와 땅속 깊이 고인 샘물을 사용하여 술을 빚는다고 합니다.

여름철 황혼 녘에 술을 빚어 밤을 재운 뒤 새벽 닭이 울면 마실 수 있다는 계명주는 수원시 권선구 지역의 술이며, 경기도 안양 2동에는 백 여 년 전 남평 문씨 가문에서만 전해져 옥수수와 현미, 엿기름, 고구마 등으로 빚은 옥미주가 있고, 소나무 작은 가지를 삶아 우린 물에 당귀, 두견화, 국화를 넣고 찹쌀로 빚은 서울시 지정 무형문화재 2호 송절주,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나무로 술을 저어 만든 약산춘, 또 옛날 한 선비가 길을 가다가 한 젊은 이가 매를 들고 늙은 이의 종아리를 치는 모습을 보고 분개하여 따졌더니, 젊은 이의 말이 ‘이 사람은 내 자식인데 내가 주는 술을 먹지 않아 이렇게 늙어 버렸소’ 하고 말을 하더라는 백세주도 경기도 지방의 술이랍니다.

 

충청지방의 술

충청지방의 이름난 술로는 청양지방의 특산물인 청양 구기자주가 있는데 옛날 중국의 진시황이 오매불망 찾았다는 동방의 불로초가 바로 구기자라는 설도 있고, 한 마을에 백세를 넘는 사람이 허다하여 그 원인을 찾았더니 그 마을의 한 가운데 약수터가 있고 그 약수터 근처에 커다란 구기자 나무가 뿌리를 약수터로 드리워 있었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구기자 나무 뿌리가 드리워진 약수를 상용하여 그 마을에 장수하는 이가 그렇게 많았다고 하니 구기자는 참으로 명약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또한 면천지방의 두견주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복지겸과 얽힌 이야기로 유명합니다. 복지겸이 병을 얻어 거의 죽게 되었을 때 그의 병이 낫기를 기도 드리던 딸 복지영랑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아미산의 진달래를 따다가 안샘의 물을 길어 술을 빚어 술을 마시게 하고 치성을 다하면 병이 낫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산신령의 계시에 따라 이를 그대로 행한 즉, 과연 복지겸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으며, 이후로 이러한 방법대로 빚은 술을 면천 두견주라 부르고 있습니다. 전승자가 없이 면천두견주 보존회가 그 맥을 잇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통주 가운데 국가지정 중요 무형문화재는 서울의 문배주와 경주 교동 법주, 그리고 면천 두견주 세 개 밖에 없으며 나머지는 지방 무형문화재이거나 민속주 제조 허가를 얻은 술들입니다.

두견주 다음으로 이야기할 술은 이 번 전통주 기행의 대상이 될 아산의 연엽주가 있습니다. 아산 외암리 민속촌 가운데 이참판댁 가양주로 잘 알려진 연엽주는 원래 궁중에서 빚던 방식을 이어받은 지라 그 제조방법이 까다로워 빚기가 쉽지 않았지만 현재도 전승되고 있습니다. 연엽주가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 때부터인데 조선시대 병자호란이 한창이던 시기에 이완장군이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워 주고 원기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빚어 마시게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150여 년 전 고종 3년에 계속된 가뭄으로 백성이 기근에 허덕이자 대궐이나 사대부 집이나 할 것 없이 잡곡을 섞어 먹게 하고 반찬 가짓수를 줄이게 하여 당연히 고종 황제의 수라상에도 술이나 식혜, 수정과 등이 올라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임금이 제대로 된 식사 조차도 하지 못하게 된 것을 죄스럽게 여긴 이원집이 빚어 진상한 술이 바로 아산의 연엽주라고 합니다. 지금은 이득선씨가 전수자로서 충남도 기능보유자는 그의 부인 최씨가 이씨 종가의 맏며느리로서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중원지방에는 청명일에 밑술을 담그고 보름이 지난 곡우날 덧술을 한다는 청명주가 있으며 술이 달아서 부녀자들도 잘 마셨다고 합니다. 청명주는 원래 궁중의 진상 품이었는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그 맥이 끊기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충주시 가금면에 사는 김영기씨가 오랜 각고 끝에 마침내 복원에 성공하여 민속주로서 충청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2호로 지정을 받았습니다.

다른 술과는 달리 죽을 쑤어서 밑술을 넣고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나뭇가지로 술을 저어 섞어 빚어 넣습니다. 청명은 24절기 가운데의 하나로 부지깽이를 꽂아도 산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만물의 생명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시절입니다. 이러한 시절의 기운을 술 빚는 속에 불어 넣어 만든 유명한 술로서 중원지방의 청명주는 은근히 취하는 술인데 전하는 말로는 한양으로 가던 경상도 선비들이 이곳에 이르러 청명주를 마시고 가노라면 문경 새재 산마루에 다다라서야 술이 깼다고 할 정도로 오래도록 그 진미를 즐길 수 있는 술이라고 합니다.

한산지방의 유명한 술 소곡주는 소국주, 소국춘 등으로 불리는데 백제의 숨결이 배어 있는술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한산 소곡주는 백제의 수도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 의해 함락된 후 백제 유민들이 지금의 한산 땅에서 마지막 항거를 하며 나라 잃은 슬픔과 한을 달래기 위해 빚어 마셨다고 하며 한 번 앉아서 마시다 보면 그 맛에 취해 일어날 줄 모른다 하여 예로부터 앉은뱅이 술로 유명합니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다안왕 11년 흉작이 들자 소곡주를 전면 금지시켰다는 내용과 무왕 37년 3월, 왕이 신하들과 함께 사비하 북포(백마강변)의 기암괴석과 경치를 즐기며 소곡주를 마시니 그 흥이 극치에 이르렀다고 전합니다. 또한 일본으로 술 빚는 법을 전한 이가 백제인 수수보리인데 바로 이 술 소곡주의 빚는 법이라고 하며 일본 사케의 원조가 되는 술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소곡주는 희한하게 만드는 재료 가운데 메주콩과 마른 고추가 들어갑니다. 그래서 약간 매운 기가 느껴지기도 하는데 소곡주는 과거 보러 가던 선비가 소곡주 맛에 정신을 빼앗겨 결국 과거를 놓친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논산지방의 가야곡왕주는 조선의 마지막 국모 명성황후 민씨의 친정 집안에서 빚어 마시던 술로서 솔잎, 구절초, 홍삼, 매실을 넣어 향이 더할 나위 없이 풍부합니다. 또한 계룡산 자락으로 접어들면 조선 16대 인조 임금에게 진상하던 술이 있었으니 바로 계룡 백일주라고 합니다. 계룡 백일주는 조선 인조 때 정사공신 연평부원군 이귀의 부인인 안동 장씨가 왕실에서 제조 비법을 배워 와서 다시 왕실에 진상했던 술이라고 합니다.

진달래 꽃과 국화를 넣어서 100일 동안에 걸쳐 빚은 술이라 그 맛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명품입니다. 계룡 백일주는 공산성 누각에 올라 금강을 바라보며 시회를 갖고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 사이에서 애용되었다고 하니 별칭으로 신선주라고도 불렸습니다. 발효된 술을 숙성시켜 창호지로 여과한 후 소줏고리로 술을 내리면 대략 백일이 걸린다 하여 계룡 백일주로 불리웁니다.

보면 볼 수록 취하는 우리 술 이야기, 다음편에서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