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전통주를 빚다 – 매년 전통을 잇는 술 삼해주 이야기

전통주, 삼해주 빚기

정월, 전통주를 빚다 – 삼해주 이야기

 한 달에 한 번씩만 써도 일년 여가 넘는데 15 번 째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자의 반 타의 반이지만 이렇게 전통주라는 커다란 주제를 가지고 다른 작은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써나가는 방식에 대하여 제게는 시를 쓰는 작업 못지않게 부담이 되지만 재미는 있습니다. 앞으로 재미난 술의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노력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미지수이지만 전통을 주제로 한 이야기의 또 다른 분야인 소리의 세계는 아직 뚜껑도 벗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척 바빠지는 걸 보니 연말 연시인 줄 느끼는 그런 처지입니다. 12월 18일은 인천 국악회관에서 흥보가 연창 발표가 있습니다. 소리를 배운 동기들이 흥보가 한 대목씩을 나누어서 이어 부르기를 하는데 저는 이날 발표하는 부분의 맨 마지막을 부르기로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소리가 아직 많이 모자라고 거칠어서 내심 걱정이 많습니다. 부르기로 한 대목은 흥보가 놀보 집을 쫒겨 나와서는 매품을 팔기도 하지만 도대체 살궁리가 없어 굶다가 자식들이 거의 죽게 되어서는 놀보 집으로 식량을 꾸러 갑니다. 그러나 놀보는 식량은 고사하고 지리산에서 건목쳐온 박달나무 홍두께로 흥보를 흠씬 두들겨 패줍니다. 매를 견디지 못한 흥보는 부엌으로 뛰어들지만 부엌에서는 놀보 마누라가……

아마도 밥 푸는 주걱만 보면 여러분들이 연상하는 부분이 있지요? 그렇습니다. 놀부 마누라가 흥보의 뺨을 치고 흥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통곡하면서 넉두리를 하는 대목입니다.  사설은 그다지 길지 않은데 소리 새김의 변화가 얼마나 많은지. 차라리 객석에 앉아 추임새나 매기는 입장이 얼마나 행복한 줄 새삼 느낍니다.

또 전통주 연말 총회 모임을 바로 지척에 두고 마무리해야 할 일들이 정리가 되지 않아 저마다 요구하는 바는 많은데 미처 대응을 하지 못해 송구영신이 아닌 송구하기만 할 뿐입니다. 그런데 아차차! 원고를 보낼 날짜를 넘겨 버렸지 뭡니까? 글 쓰는 이들의 습관 중에 원고를 보내는 방식이 여럿 있습니다마는 어떤 이는 미리 미리 자료 조사며 글을 모두 써 놓고 해당되는 날짜에 엿 판 끊어 내듯 보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아마도 대부분의 글 쓰는 이들이 원고 마감에 몰려 허둥지둥, 정신 없이, 아까 말한 놀보한테 얻어맞은 흥보처럼 정신 없이 내몰리며 글을 쓰게 된답니다. 그러면서도 당연히 제 정신이 아니다 보니 사람 아닌 것이 도왔다고 내심 치부하지만 글쎄요? 나머지는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길 뿐입니다.  🙂

전통주를 빚다.

  우리 조상님들은 연말 연시가 되면 항상 빚는 술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같이 온도 컨트럴이 되는 상황이면 괜찮으나 냉장고나 에어컨도 없던 시절이라 여름에 빚는 술은 쉬기가 쉬워서 함부로 술 빚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그와는 반대로 겨울에는 술이 쉴 우려가 없어서 술 빚기가 가장 안전한 계절이라 모두들 술을 빚었습니다. 그러니 연말연시라는 시기와 딱 맞아 든 것이랍니다. 물론 온도가 낮아서 발효 속도는 느려지지만 오히려 저온숙성의 조건에 맞아 술맛은 더욱 더 좋아지고 향의 깊이가 깊었습니다. 이렇게 빚는 술을 삼해주라고 불렀습니다. 한자로 쓰면 三亥酒 라고 쓰지요. 석 삼자에 간지로 보아 돼지 해를 씁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구요?

전통주를 빚는 방법을 적어 놓은 책 가운데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몇 권을 말씀 드리면 ‘산림경제’, ‘역주방문’, ‘시의전서’, ‘수운잡방’, ‘산가요록’,’규곤시의방’ 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규곤시의방의 다른 이름인 ‘음식 디미방’을 말씀드리면, ‘음식디미방’은 경북 북부의 안동과 영양 일대에서 살았던 貞夫人 안동 장씨(1598~1680)가 말년에 저술한 음식 조리서로서 17세기 중엽 우리 조상님들의 식생활에 대하여 실상을 잘 알려 주는, 여성이 저자가 된 희귀한 자료입니다. 책의 겉 표지에는 ‘규곤시의방’이라 적혀 있지만 권두서명에 ‘음식디미방’으로 되어 있어서 모두들 ‘음식디미방’이라 부릅니다. 여기서 “디미”란 무슨 뜻일까요? 디미는 知味를 뜻하거나 至味를 뜻한다고 합니다. 바로 맛을 본다는 뜻이니 음식 맛을 좋게 하는 비방이 적힌 책으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겠지요? 면과 떡을 만드는 법과 생선과 고기를 다루는 법이 실려 있고 마지막 장에는 술 빚는 법과 초를 만드는 법이 적혀 있습니다. 이쯤 되면 안동 장씨는 요즘 말로 하자면 요리연구가 라고 하면 딱 이겠습니다.

그 내용 가운데 정월 첫 해일에 술을 빚되 둘째 해일(간지: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에 덧술을 하고 세 번째 해일에 이차 덧술을 하여 충분히 발효 숙성시켜서 먹으니 그 맛이 죽여 줄 수 밖에 달리 도리가 없겠지요? 첫 해일과 둘째 해일의 간격이 12일간이요, 다시 셋째 해일까지 12일간이니 술 빚는 시간만 24일이 넘고 다시 발효 숙성시켜서 거르고 먹자면 춘삼월 소식이 들려 올 때쯤이니 초봄의 춘설을 앞에 두고 먹는 정취야 느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말로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또 하나 다른 책을 소개하자면 ‘산가요록’이라는 책입니다. 요즘 “마의”라는 드라마가 널리 알려지고 있지요? 짐승을 고치던, 요즘으로 치면 수의사인 주인공이 의사가 되고 나중에는 어의까지 되는 입지전적인 과정을 드라마로 방영하고 있는데 저는 ‘산가요록’을 지은 전순의라는 분도 바로 이러한 분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방속국 피디들이 ‘대장금’이나 ‘마의’에 대한 소재 보다는 ‘전순의’ 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지 의문입니다. 산가요록을 설명하는데 저자인 전순의 의 일생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순의는 아까 앞에서 거론한 여러 음식 관련한 책 가운데 시기적으로 가장 앞서있습니다. 원조에 해당하는 셈이지요. 조선 세조 때 사람으로 1400년대에 출생하여 1459년 세조 임종시에는 그 자리에 없었던 것으로 보아 대략 50대 말 정도의 삶을 산 것으로 보여집니다. 전순의 출신은 보통 중인계급이 의관을 지낸 것에 비해 노비나 백정 등 대단히 미천한 계급의 출신이라고 합니다. 장영실과 같이 세종임금이 그를 발탁하여 무수한 고난과 역경을 물리치고 지위가 3품에 이르렀다고 하고 어의가 되었으니 그 재주와 재능이 천재적일 뿐 아니라 학문의 깊이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궁금한 인물 ‘全循義’ (전순의)는 그 재주를 시기하는 무리가 많아서 단종 3년 신하들이 그를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성화를 부리자 전의감 제조가 전순의의 천재성을 설파하며 더 이상 그에 대한 처벌을 운운하지 말 것을 상소한 기록이 있고 성종 9년 ‘세조 때에 의술을 중요시한 전순의는 의관으로서 당상관에 올랐다’ 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대 독보적인 명의로서 최고의 부귀와 명예를 누린 인물입니다. 그의 스승은 당대 명의 노중례인데 오늘날도 전해지는 ‘향약집성방’의 저자로서 조선 전기 최고의 의학자라고 합니다.

이러한 산가요록은 조선 最古의 요리서로서 양조부문과 장 담그는 부문 그리고 38가지의 김치 담그는 법 등 총 230가지의 방대한 조리법을 기록한 중세이전의 식생활사 연구에 큰 이정표가 되는 책으로서 16세기에 만들어진 ‘수운잡방’보다도 무려 1세기가 앞선 책이었습니다.

 

바로 이 ‘산가요록’에도 삼해주 빚는 법이 적혀 있으니 조선시대 500년 시간의 대부분은 물론이요,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그 보다 훨씬 전부터 삼해주를 빚는 방식은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산가요록에 적힌 내용 가운데 삼해주 부분을 발췌해보면. 역시, 정월 첫 해일에 찹쌀 한 말을 물에 담갔다가 가루를 내고 술을 빚되 둘째 해일에 덧술하고 세 번 째 해일에 이차 덧술하는 것이 음식디미방하고 전혀 다르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삼해주에 대하여 열과 성을 다하여 거론하냐고요? 그것은 당연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인천 연수구 문학산과 연경산 사이를 이어주는 고개가 하나 있는데 이 고개가 바로 사모지 고개 또는 삼해주 고개라고도 불려서, 우리 고장 삼해주 전설이 어린 스토리텔링의 장소입니다. 그 고개 정상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었으며 그 바위 위에 조그마한 구멍이 있어 항상 삼해주라는 술이 고였었는데 인근의 중이 욕심을 내어 그 구멍을 넓게 파버렸습니다.

이후로는 술을 나오지 않고 물만 나왔다는 이야긴데, 어림짐작으로 이 고개는 옛날 중국으로 가는 사신이 지나던 길목이라 맛있는 술로 쉬어가지 않을 수 없는 곳이며 경치 또한 절경이라 분명 좋은 술이 있었을 겁니다. 좋은 술이 있는 곳은 반드시 좋은 물이 있어야 하는 고로 그 주변을 잘 살펴 보면 도처에 맑은 약수가 지금도 흐르고 있습니다.

지금에서야 대부분의 전통주 맥락이 끊어져 옛날의 그 술을 맛볼 방법은 없어졌겠지만 그래도 연말 연시 이 바쁜 순간을 맞이하여서, 아무리 바쁘더라도 이 때가 아니면 빚을 수 없는 삼해주를 옛날의 그 방법을 추측하여 빚을 요량입니다. 오히려 그 때보다 배, 생강, 울금, 계피를 더하여 “이강삼해주”를 빚어 볼 생각입니다. 술이 다 익으면 통기를 보낼 테니 흔쾌히 오셔서 즐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