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이야기 10- 진달래 꽃으로 빚는 술, 면천두견주
오늘은 면천 두견주에 대하여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지난 2월 4일 전통주 회원들과 함께 충남 당진군 면천면에 소재한 면천 두견주 보존회를 찾아갔습니다.
면천 두견주는 1986년 11월 1일 전통주 분야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86-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지정은 조금은 복잡하여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하는 지방문화재가 있고 국가에서 지정하는 문화재가 있으며 이러한 제도 이전에는 건설부라든가 내무부에서 지정한 문화재, 농업진흥청에서 지정한 문화재 등 난맥상이 있어 아직도 제대로 정리가 안된 것은 맞지만 그래도 국가 지정 문화재를 좀 더 쳐주는 그런 분위기가 아닐까요?
지정 당시 증조모 때부터 두견주를 빚어온 박승규(朴昇逵:1937-2001)씨를 기능보유자로 인정하였으나, 돌아가시자 현재는 기능보유자 없는 보유단체로서 면천두견주 보존회가 활동하고 있으며 보존회장은 오순근님이 맡고 계셨습니다.
면천두견주 보존회로 출발~!
출발할 때 네비게이션을 작동 시키고 출발하였으나 막상 도착 무렵에는 목적지를 지나가 버렸습니다. 양조장의 겉모습을 나름 생각하며 오다가 보니 민간 창고 같은 허름한 건물이 양조장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네비게이션도 무시(?)한 채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이지요. ^^
되짚어 100여미터를 오니 뒤에 출발한 팀이 양조장 앞에서 우리를 맞아 주더군요. 하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작업장과 발효,숙성실이 정갈하게 나눠져 있고 깨끗하게 관리 되고 있어 나름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의 정성이 새삼 알뜰하게 느껴졌습니다.
오래전부터 면천 두견주를 꼭 한 번 와서 맛보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술에는 없는 스토리텔링이 풍부하고 진달래라는 특유의 재료를 넣어 빚은 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술에는 다른 나라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재료가 들어 갑니다. 그 종류도 목적에 따라 향을 뛰어나게 할 요량으로 넣는 가향 재료에서 인체에 순기능을 목적으로 한 기능성 재료, 그리고 맛을 더 좋게할 목적으로 넣는 증미 재료까지 여러 가지지만 우선 가향을 목적으로 하는 술의 가향 재료에는 백 가지 꽃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보통 꽃을 넣어 빚는 술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연꽃을 넣은 연화주(하향주), 국화를 넣어 빚은 국화주, 도화주, 칡꽃술, 송화주, 매화주, 능소화주, 밤꽃술과 여러 가지 꽃을 섞어서 빚는 백화주 등등이 있고 배꽃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지만 이화주(?) 도 있답니다.^^
꽃으로 빚는 가향주 101가지(한국의 전통 명주) 란 책에 보면 같은 두견주라도 방법이 다르고, 또한 모든 꽃술의 방법도 몇 가지 씩 되니 이 방법 다 사용해서 맛보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전통주 정기모임 때 빠짐없이 참석하여 여러 동인들이 빚어 온 술을 맛보면 비교적 경험을 많이 손쉽게 할 수 있지요. ㅎㅎ (나꼼수 임다)
진달래 꽃잎과 찹쌀로 담그는 향기나는 민속주 두견주는 예로부터 ‘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 일컬어오고 있습니다. 이 술의 주조 과정은 정월 첫 해일(亥日)인 상해일에서 3월 진달래꽃이 만개될 때까지 술밑이 만들어지고 두 차례 담금한 다음 2-3주간의 발효•숙성기간을 거치는 고급 약주입니다.
색깔은 연한 황갈색이며, 단맛이 나고 점성이 있는데 신맛과 누룩 냄새가 거의 없는 대신 진달래 향이 일품인 고급술로서 알코올 도수는 18도 정도라고 합니다.
면천 두견주 보존회 오순근회장님과 직접 양조하시는 아주머니께 좋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혈액순환과 피로회복에 효능이 있으며, 콜레스테롤을 낮추어주어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는데, 이 술을 담글 때 꽃술은 독성분이 있으므로 반드시 제거하고 술을 빚는다고 합니다.
고려시대부터 전래되는 이 술에 관하여는 고려의 개국공신 복지겸(卜智謙)에 얽힌 전설이 있는데, 복지겸은 면천 복씨의 시조로 고려를 세운 개국 공신 중에 한 분입니다. 갖은 어려움을 딛고 여러 차례의 반란을 평정한 공으로 무공이란 시호를 태조 왕건이 내렸다고 합니다. 그가 만년에 병이 들었는데 온갖 좋다는 약을 다 써도 병이 낫지 않자, 그의 어린 딸 영랑이 아미산에 올라 100일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신선이 나타나 이르기를, 아미산에 활짝 핀 진달래꽃으로 술을 빚되 반드시 안샘(당진시 면천면 성상리)의 물로 빚어 100일 후에 마시고 뜰에 2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어 정성을 드려야만 효과가 있다고 하였고, 딸이 그대로 하였더니 복지겸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전합니다.
이러한 전설을 품고 있는 면천 두견주는 전통 민속주 제조기능을 보존하고 전승하기 위해 면천의 두견주 제조기능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으며, 현재는 보유자 없이 ‘면천두견주 보존회’를 기능보유단체로 인정(2007년 3월 12일)하여 그 전승의 맥을 잇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양조장으로 들어서니 하얀 작업복을 입은 아주머니 여러 분께서 우리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안에는 이미 면천 두견주 몇 병을 정갈한 도자기 병에 담고 잔도 준비하여 간단한 안주 몇 점과 함께 맛보기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면천 두견주 보존회 오순근회장님의 두견주에 대한 내력과 술 빚는 과정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 드디어 시음에 돌입하였습니다. 전통주 특유의 맛과 진달래 향이 입안을 맴돌다가 나도 모르게 목구멍을 넘어 가버리더니 뒤이어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워 서로 쳐다보는 상대방의 눈들이 가느다랗게 변한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게슴츠레해지는 얼굴 빛이 부끄러워 공장장님이 이끄는대로 어둑한 숙성실로 재빨리 따라 들어갔습니다. 정갈한 스테인리스 드럼통이 수 십 여 개가 늘어서 있고 제각각 빚은 날짜 팻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 중 공장장님이 이제 곧 병입 직전의 술통을 개방하더니 우리에게 또다시 맛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보통 양조장을 가더라도 아직 개방 전의 술통을 개방하여 술 맛을 보여 주기까지는 하지 않는지라 그 파격에 그저 놀랐습니다.
관람이 끝나고 질의 응답 시간이 왔을 때에도 일반 관람객의 경우 평이한 질문 만 있었겠지만 우리 일행은 그런대로 술에 입문하여 이력이 있었던 터라 질문이 조금은 까다로웠을 것이건만 싫은 내색 없이 열성적으로 답변을 해주시는 보존회 회장님의 허연 백발이 훨씬 더 열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제 느낌 만은 아닐 터…… 그 정성에 감복해선지 다들 면천 두견주 서너 박스씩 사 들고 왁자하니 차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가다가 점심 때 반주용으로 하라고 덤으로 한 박스를 더 얻어서 우리 일행은 다음 목적지인 신평 양조장으로 향하였습니다.
하얀 연꽃 백련 막걸리를 만들다, 신평양조장
두 번째로 가는 신평양조장은 두견주 양조장과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지라 술동인 중에 한 분인 이종우님(구월동 갈매기의 꿈 주점 운영)이 주점에 납품 받는 막걸리 가운데 탁월한 술이 있으며 그 양조장이 여기서 멀지 않으니 이왕지사 들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길래 불감청 고소원이라 즉각 찬성하고는 운전대를 신평면으로 돌렸습니다.
신평 양조장의 김용세 사장님께서 직접 설명을 해주고 계십니다. 충남 당진군 신평면에 소재한 신평 양조장은 당진군의 브랜드 미 해나루쌀과 백련 잎을 가미하여 빚은 막걸리인 하얀 연꽃 백련막걸리를 빚는 곳으로, 80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대표 지역 양조장 중 하나입니다.
하얀 연꽃 백련 막걸리의 탄생은 2대째 대표인 김용세씨가 1980년대부터 전통의 술 맛을 찾아 복원시키고자 고문헌을 연구하면서부터 만들기 시작한 제품으로 그 맛이 맑고 경쾌하며 연꽃 특유의 구수하면서도 상큼한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각종 전통 차 제조에 능한 전통 차 명인인 김용세씨는 과거 사찰에서 비밀스럽게 전수되어오던 백련 막걸리 제조비법을 계승하여 백련 잎을 차의 형태로 만들어 막걸리에 접목을 시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양조장을 들어서는 입구에 마중까지 나와 주신 김용세 사장님은 시골 마을의 맘씨 좋은 할아버지 그대로였습니다. 양조장 입구에는 커다란 나무가 드리워져서 훨씬 고풍스러웠고 80년의 역사가 묻어나 술 맛이 저절로 날 것만 같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좀 전에 가보았던 두견주 양조장은 그다지 냄새가 없었지만 신평 양조장은 들어서자 마자 시큼하고 구수하며 뭔가 옛날 고향의 냄새를 느끼게 하는 박물관 같은 양조장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양조장 한 가운데서 신평 막걸리에 대해 일장 강의를 들은 후 얼마나 오래 된 지 가늠할 수 없는 항아리들과 파이프 라인(?)들 그리고 엄청 큰 솥과 발효 통 등을 보면서 역사와 전통이란 게 이런 곳에서 묻어 나온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신평 막걸리의 주 제품은 백련 막걸리로서 병에 담은 것과 플라스틱 통에 담은 것 두 가지가 있는데 병에 담은 것이 훨씬 더 고급 제품이라고 하네요. 가격도 월등하였습니다. 병에 담은 것은 강남에서 운영하는 신평 양조장 주점(김용세 대표 아드님이 운영)에 공급하거나,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한다고 하며 플라스틱 병에 담은 것은 일반 대중용으로 납품한다고 합니다.
이종우님과 안면이 있었던 사이라서 인지 보여주지 않는 부분도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렸으며 설명도 상세하게 해주어 이곳을 들른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왜목마을에서 맛있는 회와 함께 진달래로 빚은 면천 두견주를..캬~ 역시 백련 막걸리 몇 박스를 사고, 덤으로 한 박스를 얻어 우리들은 왜목에 있는 바닷가 횟집으로 풍성한 점심을 위하여 출발하였습니다.
원래는 인근 영탑사도 들를 예정이었지만 맛있는 술을 두 가지나 얻은데다 이 술에 횟감을 안주로 허기진 배를 채울 욕심으로 생략하고 내처 와버렸으니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맞는 모양입니다. 우리 일행은 마침내 면천 두견주와 백련 막걸리를 잔에 채워 맛있는 횟감을 안주 삼아 음미하며 마셨습니다. 입안을 감도는 그 맛이야 이루 말로 다하겠습니까?
여행의 백미는 먹는데 있고, 먹는 것 가운데 으뜸은 술 맛이지만, 그 술의 내용을 잘 알고 풍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여 다정한 사람들과 함께 청량한 서해의 바다를 보면서 마시니 모두 갖추었다고 말할 뿐입니다. 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