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 시리즈7 – 과학과 예술의 사이에서 밤하늘의 별을 담다.
올 겨울처럼 무척 추웠던 2011년 12월 10일 밤. 어두운 밤하늘에 붉은 달이 떴습니다. 평소처럼 밝고 노란 보름달이 아니었죠. 달의 한쪽 면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평소의 달은 사라지고 붉은 달로 바뀌었습니다. 바로 태양과 달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장엄한 광경인 개기월식입니다.
붉은 달은 평소의 달에 비해 다소 어둡게 보였지만 그 색다른 느낌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묘한 것이 있습니다. 이런 맛에 밤하늘을 보는 것이겠죠. 천체망원경을 설치하고, 카메라를 장착한 다음 셔터를 눌렀습니다. 카메라 모니터에 붉은 달 이미지가 나타났고, 그 달을 보는 순간, 약 20년 전, 1980년대에 보았던 월식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맨몸 하나만으로 붉은 달 한 컷을 찍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던 과거의 아득한 그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처음은 단순한 모방에서 시작된다
천체사진은 약 30년 전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 되었습니다. ‘빛이 그리는 예술’이라는 사진 기술이 발명되었고, 이 기술이 과학의 한 분야인 천문학에 도입되면서 천체사진이 탄생했습니다. 천체사진은 천문학 연구의 기초 자료를 제공하고 있어 과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분야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천체사진 또한 사진의 한 분야이기도 합니다. 사진은 예술입니다. 있는 그대로 만을 거짓 없이 추구하는 과학과 작가의 손에서 의미 있게 변형되는 예술의 만남, 어딘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는 부자연스러운 장면이 연출됩니다.
초창기 국내에서는 몇몇 선각자들에 의해 천체사진이 시도 되었습니다. 지식도 장비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의 천체사진가들은 장비라고는 변변치 않은 카메라 하나와 손수 자작한 천체망원경만으로 천체사진을 시도했습니다. 외국에 비해 터무니없이 부족한 필름 종류, 각종 현상, 인화 기자재, 게다가 천문 현상에 대한 정보 및 기술마저 어두웠던 시절에 천체사진이란 분야는 넘지 못할 하나의 벽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이나 일본의 유명 천체사진가들이 찍은 작품을 서적을 통해 접하면서 천체 사진을 배우고 연구했습니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어떻게 저런 사진이 만들어졌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비슷한 장소에서 비슷한 사진을 찍어도 외국인들이 찍은 작품과 많이 달랐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다른지 도무지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사용한 기술을 추적하여 비슷하게 시도를 해보아도 비슷한 작품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숨겨진 기술을 찾기 위해 밤낮으로 고민했고,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인고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것이 또 장벽으로 가로막는 그런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수준의 차이는 다방면의 복합적 결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차이는 단순한 천체사진이라는 한 분야의 기술적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천체사진과 관련된 모든 기술뿐만 아니라 그 토대가 되는 기초 과학의 토대 차이, 나아가 문화적, 경제적 수준의 차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그것을 단순하게 한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따라잡음으로써 극복하려 했으니 답이 찾아지지 않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점차 천체사진에 대한 내공이 쌓이고 기술적 차이가 극복되어 나가면서 국내 천체사진가의 작품도 외국의 것과 비슷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많은 분야에서 외국의 유명 천체사진가에 미치지 못하지만 어떤 분야에서는 이제 우리가 앞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요즘에는 과거와 달리 기술적인 차이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만큼 우리도 발전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초기에는 단순한 기술적 발전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했습니다. 비록 외국의 어느 누군가가 이미 달성해 놓은 것이긴 했지만 그 기술을 얻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했습니다. 많은 시도와 좌절 끝에 작품을 향상시키는 새로운 한 가지 기술을 터득했을 때 우리의 수준도 그만큼 높아졌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남을 따라잡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나의 것을 되새겨보고 보완하며 새로운 것을 추구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어떤 분야이든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 그에 따라 또 다른 것이 보이는 법입니다. 천체사진에서도 이제는 단순히 기술적인 면뿐만 아니라 그 사진의 내면과 의미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우주에 떠 있는 하나의 천체를 단순히 더 잘 찍으려는 그런 노력만 했습니다. 그러나 수준이 높아지면서 다른 면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기술 수준은 그 의미가 퇴색되었고, 그보다는 그 대상을 왜 찍는가, 그 대상에 보다 많은 의미를 부여할 방법은 무엇인가, 또 그 사진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등을 고민하며 찍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단지 과학적인 사진에서 벗어나고, 또 겉보기에만 화려하고 멋진 천체사진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추구하게 됬습니다.
창의란 자신의 수준에 따라 달리 보인다
창의적인 것이란 무엇일까요? 천체사진에서, 남들이 찍지 않은 우주의 새로운 천체를 찍는 것이 창의적인 것일까요? 그게 아니라면 남들이 시도해보지 않은 새로운 기법이나 기술을 연마하여 색다른 천체사진을 찍는 것일까요? 앞서가는 사람을 따라잡는 것이 지상의 목표였던 시절에는 단순히 기술적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창의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술적 차이가 거의 사라진 현재는 새로운 기술뿐만 아니라 사진의 의미에서 창의성을 찾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천체사진을 찍어오면서 느끼는 점이라면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입니다. 저와 같은 수준이거나 한 차원 수준 높은 작품의 기술과 내면은 이해하며 배울 수 있지만 서너 차원이 높아지면 더 이상 이해 불가한 영역이 됩니다.
달리 말하면 제 자신이 발전할수록,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저의 작품도 더 진화하게 되었습니다. 천체사진에서 제 자신이 발전하면서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만을 보고 따라 하려던 그 시각에서 벗어나 그 내면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한 단계 더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창의적인 것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앞서 간 외국 천체사진 선각자들은 과학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의미 있는 사진, 그러한 천체사진을 추구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제 자신의 수준이 어느 단계에 있는가에 따라 창의성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창의성에 접근하는 방법이 달라지며 결과물도 달라집니다. 단순히 학문적 연구로서의 천체사진은 단편적인 천문 현상의 기록에 지나지 않습니다. 분석하고 연구할 대상이 담겨있는 이미지일 뿐이죠. 그러나 우주 저편의 신비한 모습을 찍은 사진을 접하면 그 사진은 우리에게 또 다른 감성을 불러일으킵니다. 예술 작품이 아니면서도 예술적 감각을 주고 나아가 그 작품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과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마저 제공합니다.
제 천체사진 하나가 우주의 신비를 푸는 열쇠가 되는 과학 기록의 의미를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진이 보통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나아가 과학을 꿈꾸는 청소년들의 과학적 감성을 자극할 때 저의 천체사진은 보다 큰 의미를 가지리라 봅니다. 그러한 사진을 위해 새로운 창의적인 시도를 거듭하는 노력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여기에서 한 단계 위로 올라서면 또 다른 창의의 세계가 저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