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점도 나만 가지고 있으면 개성이다
여대 교수인 필자에게 십여 년 전 작은 고민이 생겼습니다. 대머리 유전 인자가 본격적으로 발현된 것입니다. 그런데 거리의 남자들을 유심히 살펴보니 의외로 나처럼 옆얼굴까지 수염이 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난 다른 사람들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것을 최소한 두 가지는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대머리와 구레나룻.
“가발로 대머리를 감추기 보다는 수염으로 균형을 맞추자.” 그래서 전 지금처럼 남은 머리카락을 모두 짧게 깎아 대머리를 그대로 드러낸 동시에 끊어짐 없이 얼굴전체를 두른 구레나룻 수염과 여기에 이어진 콧수염을 기르게 되었습니다. 중 고등학교 내내 ‘말썽꾸러기 문제아’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던 아들이 이번에는 수염을 잔뜩 기르고 나타났으니 보수적인 부모님의 반응이 어떠했을지 쉽게 짐작될 것입니다.
꼭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
그 즈음 필자에게 과거 한 번도 손댄 적 없는 새로운 연구에 뛰어들 계기가 생겼습니다. 일년의 안식년 동안 미국 코넬대학 화학과에서 질소화합물의 단결정을 합성하는 연구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실험을 시작하고 보니 내용을 잘 모르는 것은 둘째 치고 마치 지뢰밭을 걷는 듯 위험한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인체에 치명적인 진한 불산을 써야 하는데다 무엇보다 영하의 온도로 냉각한 액체 암모니아로 소듐 금속을 녹여내는 단계는 자칫 폭발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을 안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냄새도 지독했죠.
필자는 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모면할 길을 궁리하느라 미국에 도착한 첫 한달을 그저 빈둥대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소듐을 굳이 액체 암모니아로 녹여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지난 20여 년 동안 일본, 유럽, 그리고 미국의 주요 연구자들 모두가 한결같이 액체 암모니아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 어떤 논문을 들여다보아도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냥 누군가가 그렇게 시작했으니 다들 그리 해 왔던 것은 아닐까?” 어쨌건 필자는 그 위험하고 냄새 나는 실험을 똑같이 반복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그냥 낮은 온도에서 소듐을 증발시켜버리면 되지 않나?” 한 달 후 작은 가열기와 냉각트랩, 그리고 진공펌프를 써서 소듐을 진공의 낮은 온도에서 증발시키는 조잡한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나름대로는 잔머리를 굴려 액체 암모니아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간단한 방법을 찾은 것입니다. 결과는 의외로 좋았습니다. 그 동안 발목을 잡고있었던 커다란 장애물 하나가 제거되면서 한번 합성을 끝내는데 걸리는 시간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반복된 실험이 가능해지면서 한 해 동안 무려 십여 개에 달하는 신물질을 단결정으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라
일 년 간 신나게 연구를 마치고 학교에 돌아오니 그 동안 해왔던 교양과목의 강의방식을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양과목이 꼭 지식교육이어야 할 필요가 있나? 그냥 관점 교육이면 안 되나?” 전 ‘화학의 이해’라는 교양강의를 모든 수식과 화학식을 배제 하고 사진, 그림, 그리고 직접 그린 만화로만 내용을 꾸미고 눈을 확 끄는 몇 가지 간단한 데모와 영화 관람까지 집어넣은 관점 교육으로 꾸몄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강의에 적합한 교재가 없었습니다. 대형서점의 교양과학 코너에 가서 아무리 기웃거려도 문과와 예체능계 학생들에게 적합한 과학 서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교양과목의 교재마저 그렇게 어려울 필요는 없잖아?” 그래서 한 꼭지씩 강의 내용에 관련된 아주 쉬운 글을 직접 쓰고 직접 그린 만화를 삽화로 넣어 과학도가 아니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으로 『지구를 부탁해』라는 책을 발간하여 교재로 삼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의 입소문 덕에 그 강의는 인기 교양강의가 되었습니다.
물음표와 지식이 만나면 창의성이 된다
곰곰이 무엇이 저를 별나게 만들었나 생각해 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물음표(?)였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 호기심을 품고 그것들이 꼭 그래야만 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호기심은 대상에 대한 이해와 지식으로 필자를 이끌었고 의문은 지금까지 해 왔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을 찾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가장 창의적인 사람은 다름 아닌 어린아이들입니다.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보이고 자신이 접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습니까! 그저 물음표로 똘똘 뭉쳐있는 것이 바로 어린아이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린아이를 창의적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 물음표들이 지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위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지식을 쌓도록 도와줍니다. 호기심, 의문, 그리고 지식이라는 삼박자가 맞아 떨어졌을 때 마침내 창의성이 발휘되는 것 입니다.
결국 창의성은 사회의 산물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어른들은 교육과정을 통해 아이들의 물음표를 꾹꾹 다져서 눌러버립니다. 어른들은 세상이 정답과 오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과도한 호기심과 어이없어 보이는 질문은 화를 부릅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격언을써가며 이리 불쑥 저리 불쑥 튀어나오는 아이들의 물음표들을 싹둑 잘라버립니다. 오답을 남발하는 아이는 반사회적이라는 딱지를 붙여 소위 ‘따’를 시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 세상에 정답이 있기라도 한 것일까요? 그러고 보니 필자의 창의성의 핵심은 다름 아닌 반항심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모와 선생들이 붙인 온갖 부정적인 꼬리표를 달았고 심지어 학적 징계까지 받아가면서도 내 속에 어릴 때부터 잠재해 있던 물음표를 결코 꺾지 않았던 결과를 두고 이제와 사람들이 창의성이라고 하니 말입니다.
강남스타일로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싸이의 창의성도 알고 보면 반항의 산물입니다. 하나의 틀 속에 구겨 넣으려는 시스템에 반항하는 그런 문화를 싸잡아서 소위 B급 문화라고들 하니 참 서글픕니다. 왜 우리는 원래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을 그대로 지키기 위해 반항해야만 하는걸까요? 그리고 왜 그것을 B급으로 취급받아야 할까요? 결국 창의성이란 개인의 산물이기보다는 사회의 산물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내재해 있던 창의성을 과연 그 사회가 성장과정에서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래서 획일적인 사회에서는 결코 개인의 창의성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습니다.
자신이 품었던 물음표들을 그대로 간직한 채 굳이 반항하지 않더라도 상처받지 않고 지식을 쌓을 수 있는 다양성 사회에서만이 창의성이 극대화됩니다. 소위 창의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외국에서 교육받은 과거가 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아직도 획일성의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한 우리의 현실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한국의 미래는 밝다
그래도 필자는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 매우 낙관적입니다. 십 년 전에는 내 구레나룻과 콧수염을 보고 다들 한마디씩 했지만 이제는 이를 문제 삼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번 추석에 나보다 여섯 살이나 많은 형님이 구레나룻과 콧수염을 기른 채 가족모임에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연로하신 부모님도 이제는 우리 형제를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맞습니다. 우리 사회가 다양성 사회로 가고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제 미래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창의성을 지키기 위해 굳이 반항적이 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마음이 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