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인 요리의 세계에서 창의의 가능성을 열다 – 박찬일 요리연구가가 요리하는 창의성

이탈리아에서 요리할 때의 일이죠. 뭔가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기 위해 잔뜩 너저분하게 재료를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오렌지 껍질을 오이즙에 숙성시켰다가 샐러드 소스를 만들면 어떨까, 쇠고기 안심에 딸기 주스를 주사기로 주입한 후 구우면 어떤 맛이 날까…새로운 재료로 창의적인 요리는 물론이고 기본 요리의 배합법을 바꾸어서 전혀 다른 요리를 만들려는 노력도 해봤죠. 이를 테면, ‘1:2:1’이라는 재료 공식이 있다면(마치 한식 양념에서 간장 설탕식초의 배합처럼) 그걸 ‘2:1:0.5’로 바꾸어 보는 식으로요. 인상을 찌푸리며 새로운 배합으로 만든 요리 간을 보는 나를, 셰프 쥬세페가 한참 쳐다보더니 한 마디 하네요.

“으흠, 좋은 일이야. 하지만 이건 알아둬. 네 생각을 이미 수 백 년 동안 선배 요리사들도 비슷하게 했다는 점을. 그런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현대 요리가 탄생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해.”


 튼튼한 토대 없이 어떤 창의도 나올 수 없다

미술에서 물감의 배합을 달리하면 전혀 다른 색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의 발견이라고 뛸 듯이 좋아한다면 바보라는 얘기입니다. 이미 선배들이 그런 배합을 다 시도해봤고, 그 배합이 딱 맞아 떨어져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들이 현대에 살아남았다는 뜻입니다. 요리도 그렇죠. 클래식이란 다시 말해서 ‘절대 다수가 좋아하는 맛’을 의미합니다. 어떤 소스가, 어떤 요리법이 지금처럼 된 건 사람의 혀가 그걸 가장 맛있다고 느낀다는 의미죠. “그래서 텍스트가 중요한 거야. 텍스트는 수 세기 동안 수많은 선배들의 노력의 결과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요리법이 결국 요리의 기본이 된다는 뜻일 터. 우리가 일정 기간 일정한 요리의 기초를 배운다는 건 그래서 의미가 있습니다. 튼튼한 토대가 없으면 어떤 창의도 나올 수 없는 것이죠. 구상의 밑바탕에서 추상이 나옵니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조차 그의 단순한 석고데생 훈련과 해부학적 조각기술에서 출발한 것이 분명합니다.

현대의 요리, 파스타
현대의 요리는 수백년간의 창의가 더해져 완성 되었습니다.

창의적인 요리가 탄생하기 힘든 이유

요리는 상당히 보수적인 분야입니다. 사람들은 전위적인 옷(이를 테면 앞면이 전부 지퍼로 된 원피스 따위)을 입는 데 주저하지 않지만, 음식을 먹는 데는 대단한 인내심을 발휘합니다. 함부로 낯선 음식을 입에 넣지 않는 것이죠. 더구나 돈을 주고 사먹는 요리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건 인간의 유전자를 통해 대대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선사시대부터 시작된 유전자거든요. 모르는 음식을 먹으면 목숨을 잃게 된다는 보수성이 수십만 년의 인류 역사에 유전되고 있는 것이죠(짐승도 마찬가지). 비록 ‘식당’이라는 안전한 지붕 아래서 먹는 음식이라도 마찬가지죠.
그런 음식에 대한 보수성은 늘 창의적인 요리를 위축시킵니다. 굴을 넣은 호떡이나, 멍게를 넣은 라면을 우리가 안 시키는 것은 그런 까닭입니다. 백화점에서 산 5만 원짜리 티셔츠가 마음에 안 들면, 장롱에 넣어두고 그만이지만, 5천 원짜리 음식이 맛이 지독하게 맛이 없으면 환불이라도 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입니다. 그러니 창의적인 요리가 세상에 발붙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제 창의성은 그래서 새로운 방향으로 가지를 뻗었습니다. 우리나라 양식 요리사들이 시도하지 않는 경지로 나아가기로 일찌감치 마음먹었던 거죠. 저는 두 가지 원칙을 만들었습니다.

  • 첫째, 가장 이탈리아다운 요리를 우리 재료로 만든다.
  • 둘째, 가장 우리다운 음식을 이탈리아 재료로 만든다.

두 번째 원칙은 금세 폐기됐습니다. 말하자면, 모짜렐라 치즈로 만든 두부전 같은 음식이었는데 재료를 모두 수입해야 한다는 점이 우선 걸렸죠. 저는 ‘신토불이’의 신봉자입니다. 그건 저의 생각이라기보다 수많은 최상급 요리사들이 이미 실천하고 있는 부분이죠. 요리의 신이라고 하는 프랑스의 알랭뒤카스가 도쿄 지점을 내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도쿄의 시장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도쿄의 일본 재료로 프랑스 음식을 만들었죠. 그건 다른 뜻이 아니라 그래야 가장 맛있기 때문입니다. 싱싱한 현지 재료야말로 요리사를 흥분시키죠.

클래식한 요리법에 창의를 입히다

결국 첫 번째 원칙을 지켜나갔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실천해나가기 시작한 건 2005년의 일입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은 전형적인 양식만 인기가 있었습니다. 스테이크에 감자 가니쉬(고명)를 곁들여야 진짜 양식이라고 생각했죠. 스테이크는 쇠고기 스테이크만 팔렸구요. 돼지고기는 양식에서 안 먹는 요리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관습을 깨고 싶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말렸습니다.

“양식당에서 누가 돼지고기 스테이크를 먹겠어?”

창의적 요리
클래식한 기술에 더해진 창의로 완성된 새로운 요리

저는 돼지고기, 그것도 목살로 스테이크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양념은 한국의 스타일을 창의적으로 개발했습니다. 야채즙과 막걸리로 숙성을 시도하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가장 맛있는 양념을 완성했습니다. 물론 돼지고기를 가장 맛있게 굽기 위한 기본적인 실력과 ‘텍스트’가 동원됐죠. 클래식한 기술에 창의를 입히니, 대성공이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에서 드물게 돼지고기 스테이크를 잘 파는 셰프로 이름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생선요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은 당시까지 농어와 광어, 도미 스테이크가 생선요리의 대표주자였습니다. 저는 과감하게 아귀와 민어, 고등어, 삼치, 꽁치, 멸치 같은 한국의 식재료를 도입했죠.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처음 문을 열기 어려울 뿐, 새로운 요리에 맛들인 손님들이 한국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제 요리를 찾았습니다.
당시 내 식당인 ‘뚜또베네’는 그렇게 안착했고, 제가 떠난 지금도 후배들에 의해 새로운 창의로 무장하고 순항하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제 요리는 이색적인 이름을 갖추었고, 그것이 이후 강남권에서 요리 이름의 한 유행이 됐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경산 대추와 고흥 유자즙으로 숙성시킨 포항 참문어구이와 홍천 찰옥수수찜’ 재료를 요리 이름의 전면에 내세우고 원산지를 메뉴판에 명기하는 이런 방식은 사실, 제가 처음은 아니죠. 외국의 고급 레스토랑은 이미 이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한국에서 시작하고 있지 않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과감하게 시도하면서 우리 재료를 전면에 내세우는 창의를 더했습니다. 폭발적인 반응이었습니다. 이후 강남에서는 이런 방법을 쓰는 것이 유행이 됐구요. 당시 강남스타일은 이미 제가 먼저 시도한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요리계의 강남스타일!

자기 분야에 정통해지는 것, 그것이 시작입니다. 하늘 아래 전혀 새로운 창의는 나오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모든 이들이 창의적인 유전자를 잘 발휘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창의란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순간, 우리는 창의적인 가능성을 열게 됩니다. 지금도 수많은 발명가들이 부와 명예를 꿈꾸며 발명을 하고 있습니다만, 상업화되는 발명은 극히 적습니다. 저는, 현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여기서 ‘약간’ 비틀면 오히려 획기적인 창의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자기 분야에 정통해지는 것, 그것이 창의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