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곤충의 역습 그들은 과연 해충(害蟲)인가?
매미나방, 팅커벨의 습격
군 제대한 친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지지 않는 소재가 있다. 바로 어마어마한 야생동물 목격담이다. 독수리, 멧돼지, 고라니 등 믿거나 말거나 학계에 보고된 것보다 훨씬 큰 동물을 직접 봤다는 증언 속에, 흥미롭게도 ‘나방’은 아예 ‘팅커벨’이라는 공식 애칭(?)까지 얻고 있었다. 요정의 이름을 붙여준 건 일개 곤충이라 하기에 도저히 믿기지 않을 위압적인 사이즈와 화려한 무늬, 그런 존재들이 빼곡하게 모여있는 영물 같은 광경에 압도되어 헌정한 것이었을 테다.
지난 여름 우리나라 곳곳에서는 뜻하지 않게 ‘팅커벨’들의 엄청난 위세에 진땀을 뺐다. ‘매미나방’이라는 팅커벨이 도심부터 산림, 과수까지 점령하여 인간에게 피해를 입힌 것이다. 팅커벨치고는 30mm 안팎의 작은 크기에도 매미나방이 우리에게 공포감을 준 이유는 엄청난 번식력과 먹성 때문이었다. 애벌레 시기만 하더라도 벚나무, 참나무, 밤나무 등 가리지 않고 이파리를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워 최대 1,800㎠ 면적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에 놀랄 따름인데, 성충이 되어서는 평균 500개의 알을 낳는다고 하니 그들이 떼로 창궐한 모습엔 절로 혀가 내둘러진다. 거기에다가 독성분 때문에 사람 피부에 접촉하면 가려움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주거지역까지 침범된 상황에 많은 이들이 우려하기도 했다.
우리 인간은 이러한 매미나방을 ‘돌발병해충’으로 지정하여 이들의 ‘습격’을 막아내는 데에 총력을 다했다. 드론과 무인헬기를 띄워 항공 방제를 했으며, 방제대원들이 직접 현장에 나서 마을마다 들러 집 안팎에 달라붙은 유충과 번데기에 약을 치거나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방제 작업을 펼쳤다.
사실 매미나방은 올해뿐 아니라 지난 몇 년 전부터 꽃매미, 미국흰불나방 등과 함께 산림청의 감시체계 아래에 관리되던 종이다. 그런데 유독 올해 눈에 띄게 기승을 부린 이유는 무엇일까? 한 병해충 전문가는 최근 2, 3년 전부터 우리나라 겨울 기온이 높아져 겨울철 치사율이 낮아진 탓에 발생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아열대 지역에서 번성하던 곤충이 우리나라의 따뜻한 겨울을 견뎌 적응하고 정착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숫자로 뒷받침된다. 기상청이 발표한 ‘2019 겨울철 기상 특성’에 따르면 지난겨울은 1973년 이후 최고 수준인 3.1도를 기록해 평년보다 2.5도 높았다. 그러니 평균 최저기온(영하 1.4도)과 최고기온(8.3도)이 관측 이래 가장 높았던 것 또한 예상 밖이라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가설이 옳다면 전망도 밝지 않다. 지난 7월 발간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에 따르면 한반도의 기온은 지구 평균보다 더 가파른 추세로 높아지고 있다. 연구진은 전 지구 평균 지표 온도가 한 세기 동안 약 0.8도 높아졌지만 우리나라는 약 1.8도가량 높아졌다고 보고했다. 또한 이 보고서에서는 봄철 이상고온 현상과 여름철 돌발 호우가 빈번해졌음을 지적하며, 온실가스 배출 양상이 현재처럼 지속될 경우 폭염 일수가 앞으로 3배 이상 증가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기후변화와 곤충 생태계의 관계
급격한 기후변화에 농업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가뭄과 호우, 이상 저온, 일조량 등 직접적인 영향뿐 아니라, 앞서 이야기한 매미나방과 같은 사례처럼 월동해충, 외래병해충 확산에 따른 농업환경의 변화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과 농업기술원, 농업과학원 등 정부 기관에서 돌발해충에 대비한 방제기술을 개발하고 각종 피해 예방과 관리 대책을 내놓은 성과들이 모두 기후변화의 현실 속에 이루어지고 있는 노력의 일환이다.
우리의 먹거리가 이렇게 위협을 받는가 하면, 보건학계에도 비상이 걸린 것은 마찬가지다. 지난 15일 ‘생태학(Ecology)’지에 발표된 논문에서, 스탠포드 대학 마르타 쇼켓(Marta S Shocket) 박사 연구팀은 질병 전파 속도에 기후변화에 잇따른 곤충 생태계의 변화가 영향을 준다고 주장했다. 과거 소강했던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가 최근 들어 북미, 유럽지역에서 다시 급증한 원인을 찾아 분석해 보니, 모기를 매개로 전파되는 바이러스와 기온 상승 간 상관관계가 드러난 것이다.
원래 아열대 지역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가 요즘 우리나라 남부지방을 위주로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흰줄숲모기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 모기는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를 포함해 뎅기열·황열·지카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 코로나19로 전염병 확산에 관련하여 전 인류의 촉각이 곤두선 지금, 이러한 연구 결과는 귀중하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썩 반갑지 않다.
우리가 해충으로 인해 체감하는 것과는 상반되게도, 전 지구 차원에서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오히려 곤충의 수가 줄어 곤충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2018년 미 국립학술원회보(PNAS)에 실린 논문에서 미국 렌슬레어 폴리테크닉대학 브래드 리스터(Brad Lister) 박사는 푸에르토리코 열대림의 곤충 포획 실험 결과, 약 40년 사이 마른 중량 기준으로 4~8배, 바닥 끈끈이로는 30~60배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또 다른 연구로, 2017년 ‘플로스 원(PLoS ONE)’지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독일의 자연보전구역에서 곤충 포획 실험을 해보니 1989~2016년 사이 27년 동안 75% 이상 줄어들었다고 보고했다. 곤충이 먹이사슬의 주요 조절자이자 자연의 분해자로서 지구상에 필수적인 존재인 만큼, 이 연구를 바탕으로 많은 이들이 ‘곤충 아포칼립스’, 즉 곤충의 종말을 경고했다.
해충의 급증과 익충의 급감. 올해 우리나라에서 매미나방뿐 아니라 인천 지역의 수돗물 유충 파문의 주인공이었던 깔따구, 충북과 경기 지역에 출몰했던 노래기 떼, 서울 은평구 산책로에서 발견된 대벌레 떼가 연달아 이슈화 된 게 떠오른다. 어쩌면 재난 영화처럼 충격적인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는 이 모습이 결국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 종말을 예고하는 것 아닐까?
곤충 생태계, 왜곡과 오해가 사라져야
다행히, 생명을 아끼는 따뜻한 마음과 더불어 차갑고 예리한 이성까지 겸비한 과학자들은 아직 현재 진행 중인 변화를 재앙으로 결론 짓고 절망하기엔 이르다고 지적한다. 진실은 단순하지 않다. 대표적으로 뉴잉글랜드 대학의 생태학자 마누 선더스(Manu Saunders)는 ‘곤충 절멸’, ‘지구 종말’처럼 선정적인 표현은 왜곡된 것이며,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만으로 성급하게 기온 상승에 원인을 돌려 곤충의 쇠퇴를 말하는 것은 오히려 실체를 파악하고 대처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생태학 연구는 주변 동식물 공동체, 지역적 속성, 인간의 활동 및 연구 방법론 등 여러 인자의 복잡한 상호 작용에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많은 연구 결과가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과장되고 자극적인 문구에 가려 그 복잡성이 왜곡되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왜곡된 정보 전달은 강력한 살충제와 합성 비료 사용과 같은, 아직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인간의 영향력이 간과되고, 진딧물과 모기 같은 일부 곤충에 해충 프레임이 강화되는 부작용을 낳는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전문가들의 유사한 지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수돗물 깔따구 사태의 경우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정수처리시설 관리 부실 문제를 지적한 반면 일부 미디어에서는 인간의 영향력은 배제한 채 곤충의 혐오스러움을 부각해 기후변화의 징후로 다루었다. 곤충에 대한 관심 부족 탓에 생긴 오해이며, 생태계의 분해자로서 중요한 존재인 깔따구 입장에서는 억울할 이야기다.
지난 4월, ‘사이언스(Science)’지에 실린 곤충의 대규모 장기 모니터링 프로젝트도 복잡한 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1925년부터 41개국에 걸쳐 이루어진 이 연구는 육상곤충이 점진적인 감소한 한편, 수서곤충은 반대로 증가했음을 밝혀냈다. 강과 호수 등의 수질이 개선됨에 따라 나타난 성과였다. 이로부터 연구진은 곤충 생태계의 탄력성에 희망을 품게 만드는 결과라고 말했다. 단, 인류가 노력한다면 말이다. 그런 점에서 올 초 전 세계 과학자들이 입을 모아 곤충 생태계 회복을 위한 로드맵을 발표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우리의 팅커벨을 다시 생각해 보자. 나방은 해충인가, 익충인가, 아니면 생태계의 중요한 일원인가? 입장을 바꿔 지구의 시선에서 요정은 누구이며, 해충은 누구인가? 잠시 멈춘 코로나 시대에 반드시 숙고해 볼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