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칼텍스 용선팀 신입의 무한도전! 유조선 승선 체험기 2
두 번째 날이 밝았습니다. 이날은 여수에서의 하역을 마시고 대산으로 출항하는 날이었어요.
하역을 완료하고 surveyor와 2등 항해사를 따라 Ullage를 측정하는 작업을 참관했습니다. 그동안 operation을 하면서 수많은 ullage report들을 받아 봤는데 이렇게 큰 배에 도대체 어떻게 배럴 단위까지 끊어서 원유 잔량을 측정할 수 있을까라는 점이 항상 궁금했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ullage를 측정하는 작업을 참관할 수 있어 궁금증을 해소 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갑판 위에서 ullage를 재기 위해 deck 위 구멍을 개봉했을 때 ‘치이이익’ 거리는 가스 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가스 누수 소리는 화물창에 채워져 있는 inert gas가 새는 소리였습니다. 센서가 달려있는 줄자를 삽입하여 탱크의 ullage와 water level을 체크할 수 있었는데 엄청나게 정교한 작업일 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surveyor는 매우 능숙한 솜씨로 줄자 끝에 묻어 나오는 원유/슬러지를 보고 또한 센서 알람 소리를 듣고 ‘1센티미터’, ‘nil’을 외쳤습니다. Surveyor를 따라 다니면서 평소에 궁금했던 또 하나의 궁금증을 해소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원유가 어떻게 생겼고 얼마나 끈적끈적 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었습니다.
위 사진을 보면 위의 손가락에는 Basrah Crude가 묻어있고 아래 손가락에는 슬러지가 묻어있습니다.
원유는 생각했던 것 보다는 묽은 느낌이었고 냄새 또한 휘발유 냄새와 매우 흡사하였습니다. 아래에는 슬러지가 묻어있는데 슬러지의 느낌은 불순물이 많아 상당히 거친 느낌에다가 보다 끈적한 느낌이 들었고 또한 물방울도 섞여 있었습니다. Ullage를 측정하고 올라가 잔량은 환산 테이블을 보며 배럴 단위로 유추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모든 서류가 작성이 되고 모든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류에 서명하기 전 final meeting을 가졌습니다.
도선사가 승선하였습니다. 드디어 출항입니다. 이안을 위한 작업은 접안 보다는 수월하다고는 하나 모든 선원들이 stand by 할 정도로 긴장되는 작업입니다.
이안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습니다. 이안이 끝나고 여수 OPL에서 대기를 하였다가 대산으로 갈 계획이었습니다.
육지와 점점 멀어지는 저를 보며 핸드폰 신호가 끊기기 전에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앞으로 당분간은 연락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며 잠시 동안 문명을 벗어날 준비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게 왠걸. 육지가 보이지도 않은 곳에 배는 투묘를 하고 대기를 했는데 핸드폰 신호는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일상 속에서 가장 민망한 상황 중 하나를 꼽으라면 친구와 헤어지려고 인사를 다 했는데 신호등 신호가 바뀌지 않아서 어색한 침묵이 흐를 때를 들 수가 있겠습니다. 이 상황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민망함을 느끼며 우리나라 통신 infrastructure 구축이 얼마나 잘돼있는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던 계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원래 대산 접안 schedule은 25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뷰포트 스케일 6에 해당되는 바다 날씨와 서해안에 발생한 풍랑 주의보 때문에 접안은 미뤄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접안이 미뤄져 서해상에서 투묘하지 않고 drifting을 시작했습니다. Drifting을 하면 배가 계속 바다 상황에 맞춰 밀릴 수 밖에 없는데 왜 투묘하지 않고 drifting을 하냐 물어보니 해상 상황이 이렇게 나쁠 때 anchoring을 하면 앵커가 끊길 수도 있고 오히려 더 위험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당시 G. Glory호에는 700,000 bbls의 원유가 적재 되어 있었는데 이렇게 큰 배가, 그것도 공선도 아닌 배가, 그렇게 심하게 rolling (좌우반동) 할 줄은 몰랐습니다. 레포트에서만 보던 뷰포트 스케일 6이란 녀석은 무서운 녀석이었습니다.
접안 일자가 29일로 미뤄졌다는 소식을 듣고 배에는 모처럼 여유가 찾아왔습니다. 선원들이 가장 편하게 휴식 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이처럼 waiting을 하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이 여유를 틈타 저는 기관실 및 갑판 견학을 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기관실부터 견학하였습니다. 기관실의 첫인상은 ‘웅장함’이었습니다. 엄청나게 큰 공간에 모든 부품, 부속들이 큰 관계로 걸리버의 고향에 놀러 온 백설공주의 난쟁이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기관실 견학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위에서도 언급 했듯이 웅장한 규모였습니다. 또한 연료 주입 밸브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연료가 뿜어져 나오는 구멍의 규모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연료가 주입되는 구멍은 하나의 밸브에 여러 개가 나있는데 구멍의 크기는 볼펜의 끝만큼 매우 작았습니다. 이런 작은 구멍에서 연료가 뿜어져 나오는데 하루 bunker consumption이 약 75 ton 정도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사람도 없을 것 같습니다.
기관실 견학을 마치고 citadel 견학을 하였습니다. Citadel은 해적 피랍에 대비한 일종의 보호책으로 밀실을 뜻합니다. 해적에게 피랍이 될 경우 모든 선원들은 배의 시동을 꺼버리고 밀실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동안 citadel을 조그마한 밀실 정도로 생각 했던 본인의 생각은 처참하게 깨지고 말았습니다. 현재 본인이 살고 있는 집보다 넓고 천장의 높이도 2층 정도였습니다. Citadel에는 침구류, 통신설비, 비상식량 (전투식량 비슷한 종류) 그리고 화장실도 구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바닥에는 비상시에 인원체크가 수월하게 이뤄지도록 직급별 표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두운 Citadel을 벗어나 밝은 갑판으로 나갔습니다. 이전에 ullage를 측정하러 갑판에 나오기는 했었는데, 선수 측 특히 앵커가 매우 보고 싶었습니다. 300미터가 넘는 거리를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어가자 앵커가 연결 되어 있는 chain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크고 굵은 체인이 끊어 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앵커를 투묘할 때 그냥 확 놓아버려서 중력으로 인한 투묘가 이루어 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역시나 배운 남자 이성희의 예상은 다시금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앵커를 투척은 매우 정교한 작업으로 수면선까지 천천히 내렸다가 앵커가 수면에 닿으면 배가 천천히 후진을 하기 시작합니다. 배가 후진하기 시작하면 앵커를 다시 내리기 시작하는데 이러는 이유는 선체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앵커를 보기 위해 난간에 살포시 기대어 고개를 밖으로 내밀었습니다. 역시나 앵커 또한 컸습니다. 매우 컸어요! 사진 또는 글로만 봤던 유조선의 구석구석을 직접 탐방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접안 스케줄이 미뤄진 것이 저에게 오히려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지요.
자, 다음 포스팅에서는 29일 드디어 진행하는 접안 작업에 대해 이야기 해 드리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