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스트 슈베르트와 건반 위의 구도자 –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

에세이스트 슈베르트와 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 –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

 지난 3월에 전해드렸던 ‘양성원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연주회’ 기억하시나요? (바로 가기) 그 때 ‘첼리스트의 고독한 독백, 양성원의 바흐 에세이’라고 연주회를 소개해드렸는데요, 이번에는 ‘에세이스트 슈베르트와 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라 이름 붙여 봤습니다.

‘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가 낭만파 음악의 진수인 슈베르트의 작품으로 음악 팬들을 찾아옵니다. 성직자가 성지를 찾아 다니듯 연주 인생 40년 동안 항상 치열한 탐구 정신으로 한 작곡가 한 시리즈를 선택해서 철저히 파고드는 백건우이기에 이번 무대가 더욱 기대됩니다.

일례로 1996년에는 명동성당에서 메시앙에 몰두하기도 했는데, 이 때부터 ‘성직자’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생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살았던 작곡가 메시앙의 종교적 신비주의와 성당의 조합은 당연히 ‘성직자’를 연상할 수 밖에 없죠.

백건우는 단 하나의 의문점도 남지 않도록 악보를 철저히 분석하고 같은 시대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까지 비교해서 연습하기로 유명합니다. 백건우라는 이름 앞에 ‘건반 위의 구도자’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집념 때문입니다. 연습벌레로 소문난 거장 백건우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백건우 연주자

“연주자라면 당연히 연습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매일 꾸준히 5~6시간씩 연습한다. 그 이유는 수준을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항상 음악이 새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연습하는 이유는 어떻게 하면 좀 더 정확하게 진실되게 이 곡에 접근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때문이다. 음악은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것이기에 하고, 하고, 또 해야 한다.”

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첼리스트이자 모든 음악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파블로 카잘스를 언급했는데요, 파블로 카잘스는 매일 아침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으로 연습을 시작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그는 음정을 정확히 짚는다는 것을 “자신의 마음을 옳고 정확하고 고르게 잡기 위한 작업”이라고 표현했는데, 어찌 보면 모든 위대한 음악가들은 구도자의 삶을 살고 있는 듯 합니다. 또, 평생 그런 삶을 살았기에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겠죠.

백건우 연주자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대형 피아니스트’라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그래서 피아니스트 김주영은 “백건우가 어떤 피아니스트냐고 누군가 질문했을 때 맨 먼저 떠오르는 대답은, 강하고 큰 음악을 하는 연주가”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180cm의 키, 큰 손 등 외모적으로도 그렇지만, 작은 나무보다는 큰 숲, 세밀화보다 대형 지도를 그리는 피아니스트입니다.

대형 피아니스트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백건우, ⓒ 포토그래퍼 신창섭
대형 피아니스트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백건우, ⓒ 포토그래퍼 신창섭

 그런 백건우가 슈베르트를 연주합니다. 그 동안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예프, 스크랴빈 등의 작품을 주로 연주해왔고, 부소니, 펜데레츠키 등 난곡으로 소문난 곡들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기도 했기에 슈베르트를 연주하는 백건우는 조금 낯설게 느껴집니다. 물론 백건우는 지금까지 많은 레퍼토리들을 들려주었지만, 슈베르트가 구사하는 언어는 다른 작곡가들과 성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로 유명한 글렌 굴드는 “나는 슈베르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장문의 에세이와도 같은 그의 작품을 듣다 보면 불안감과 어색함마저 느껴진다”고 평했습니다. 논리구조가 확실한 바흐 스페셜리스트 굴드가 슈베르트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바흐가 간결하고 집약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시인이라면, 슈베르트는 문장이 아름다운 에세이스트라고 표현할 수 있겠죠.

백건우가 들려주는 슈베르트는 어떤 모습일까요?  ⓒ 포토그래퍼 강태욱
백건우가 들려주는 슈베르트는 어떤 모습일까요?  ⓒ 포토그래퍼 강태욱

 07년 베토벤 소나타 전곡 시리즈, 11년 리스트 시리즈 완주 이후 호흡을 가다듬은 백건우는 지금도 내면의 수필과 같은 슈베르트의 건반곡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수수하면서도 진솔한 라두 루푸, 정제되고 투명한 빛깔의 안드라스 쉬프, 어딘지 모를 쓸쓸함이 가득한 머레이 페라이어 등 그 동안 많은 연주자들이 슈베르트를 해석해왔습니다.

우리 시대의 거장 백건우가 그리는 슈베르트상은 어떤 모습일지 무척 기대됩니다. 특히 몇 해전부터 ‘섬마을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섬… 바다… 그리고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는 그이기에 ‘산과 바다, 섬이 만나는 천혜의 자연환경, 그리고 그 자연에 스며든 건축 예울마루’에서 펼쳐지는 이번 연주가 더욱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