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은신의 자유가 몰입을 높인다!

‘정신 없다’는 말이 시대언어가 되고 있습니다. 불확실해지고 복잡해지는 하루하루가 정신을 차릴 수 없게 합니다.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없는 법, 갈수록 중요해지는 몰입하는 법을 알아봅니다.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를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마주친다면?

궁금하다면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호랑이 정면 사진을 구한 후, PC에 전체 화면으로 띄워 놓거나 큼지막하게 인쇄하여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공간에서 가만히 응시해 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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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화면이고 그림일 뿐인데 왠지 오싹해집니다. 빨려 들어갈 것 같습니다. 그림으로만 봐도 이 정도인데 진짜 호랑이를 숲 속에서 혼자 맞닥뜨리면 어떨까요? 말 그대로 혼비백산일 겁니다.

흥미로운 건 호랑이만 이런 눈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초원의 제왕이라는 사자는 물론이고, 하늘의 제왕이라는 독수리와 매도 이런 눈을 갖고 있습니다. 정도가 약간 덜 하긴 하지만 숲 속 밤의 제왕인 올빼미와 부엉이도 마찬가집니다. 야생 속 제왕이 되려면 이런 눈을 가져야 하는 걸까요? 이들은 왜 이런 무서운 눈빛을 갖고 있을까요?

 

맹수들이 무서운 눈을 갖게 된 이유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것들의 모든 것에는 이유가 없는 게 없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할 뿐 반드시 이유가 있죠. 영화나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사자, 호랑이는 뛰었다 하면 사냥에 성공하지만 사실 이건 현실과 다릅니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실제 생활이 영화와 다르듯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완전히 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생에서의 삶은 ‘출연자의 삶’과 달리 험난합니다. 자신이 속한 생태계에서 최고의 존재이긴 하지만 사냥 성공률이 평균 10%에 불과합니다. 열 번 쫓아가면 겨우 한 번 성공하는 겁니다. 평원에 사는 사자는 무리를 지어 사냥하는데도 30~40% 정도 밖에 안 됩니다. 천하의 제왕이라는 호칭이 무색하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사냥감들도 예민하게 경계하고 바람처럼 빨리 달려야 살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천하의 제왕이라도 굶어 죽지 않으려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대충 뛸수록 삶의 질도 대충이 된다는 건 생존의 진리입니다. 더구나 덩치가 크기에 뛰면 뛸수록 에너지 소모가 막대하니 대충하는 순간 굶어 죽기 딱 좋습니다. 그러면 최선을 다해 잘 뛰기만 하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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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목표물을 향해 뛰어 가는 추격은 사냥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사냥은 달려 나가는 추격 훨씬 이전에 시작됩니다. 최소 2시간에서 많게는 6시간 전, 보이지 않는 시작을 해야 성공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먼저 적당한 타깃을 물색한 다음, 조용한 추격을 시작합니다. 들키지 않게 최대한 멀리서 움직여야 하고, 시야를 가리는 수많은 방해물들을 뚫고 목표물을 주시하면서 타깃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눈 깜박 하는 사이에 타깃은 무리 속으로 사라져 버릴 수도 있고, 수풀 속으로 자취를 감출 수 있으니 한 시도 눈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타깃의 행동 패턴을 알면 알수록 적절한 타이밍을 잡을 수 있고, 그럴수록 성공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죠. 잘못하면 몇 시간씩 공 들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호랑이를 비롯해 맹수, 맹금류 눈이 무서운 건 이런 과정을 신중하고도 치밀하게 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섭게 보이기 위해 그런 눈을 만든 게 아니라 자신이 목표로 하는 타깃에 무섭게 집중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 있기에 집중에 또 집중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눈을 갖게 되는 겁니다. 야생 속 제왕들에게 이런 과정을 몸에 익히는 일은 몇 년씩 걸리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먹이가 주어지는 동물원의 사자, 호랑이들은 야생에 사는 녀석들에 비해 눈빛이 훨씬 덜 무섭습니다.

몰입을 잘하는 법이 있다!

묘한 건 이들이 목표에 집중하는 과정이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원 교수(심리학)가 처음 창안한 ‘몰입'(flow)의 개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겁니다.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말한 몰입은 우리의 내면의식이 어떤 것이나 상황에 고정되어 멈춰 있는 게 아니라 물이 흐르는 것처럼, 또는 하늘을 날아가는 것처럼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질서 있게 나아가는 상태입니다.

동영상 출처 : https://www.ted.com

쉽게 말하면 앞에서 말한 호랑이처럼 움직이는 목표에 따라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초점을 놓치지 않는 집중 상태를 말합니다. 자연에는 이런 몰입을 핵심역량으로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생존이라는 것 자체가 몰입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방식도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바다에 사는 갑오징어는 몇 억 년째 살아오고 있는 생존의 귀재답게 사냥 실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녀석은 사냥감을 발견하면 온갖 색으로 번쩍거리는 몸을 만듭니다. 온몸에 분포한 색소세포를 이용해, 자신의 몸을 마치 휘황찬란하게 번쩍이는 클럽의 조명등처럼 만드는 거죠.

그러면 그걸 본 사냥감들이 놀이공원에 처음 간 아이들처럼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됩니다. 녀석들은 이 틈을 이용해 조금씩 조금씩 다가가서 ‘됐다!’ 싶은 순간 전격 기습을 통해 사냥을 성공시킵니다. 사자와 호랑이가 자신을 숨기면서 신중하고 치밀하게 다가간다면, 갑오징어는 휘황찬란한 최면술로 자신을 숨긴 채 다가가는 거죠.

우리는 여기서 모든 생명체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몰입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원리를 알 수 있습니다. 몰입은 먹고 사는 일, 그러니까 생존에 직접적으로 관련될 때 가장 잘 일어나지만,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 몰입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몰입 당하는 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지름길이라는 겁니다.

좋아 보이고 멋져 보인다고 별 생각 없이 정신을 빼앗기는 순간, 정신이 남의 것이 되는 까닭입니다. 앞에서 말한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다양한 분야에서 비범할 정도로 창의적인 사람 91명의 삶을 5년 동안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들 중 상당수는 청소년기에 인정받고 주목받던 사람이 아닌 ‘주변부’에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 분야에서 비범할 정도로 창의적인 사람이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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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단순했습니다. 그 나이 또래들과 달리 ‘특정 호기심에 집중한 까닭’이었습니다. 청소년기에는 으레 그렇듯 이런 저런 호기심이 생길 수 밖에 없는데, 그런 호기심에 관심 갖다 보니 자기 자신의 재능을 개발할 시간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 자신의 목표나 관심사를 찾아 몰입한 덕분에 잘 나가는 사람이 될 수 있었죠. 즉, 정신 없이 사는 것도 세상의 이런저런 유혹에 정신을 빼앗기는 것일 지 모릅니다.

이렇듯 생산적인 몰입은 정신을 분산시키지 않을 때 일어나는데, 이렇게 하려면 대상이나 목표가 명확할수록 좋습니다. 노련한 호랑이는 타깃을 쫓을 때 다른 사슴이 더 가깝게 나타나도 눈길을 돌리지 않습니다. 주의를 분산시키는 순간,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걸 경험을 통해 잘 알기 때문이죠. 집중하는 시간과 데드라인을 정해 놓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비결

또 하나, 유명한 매슬로우 5단계 욕구이론은 우리 인간이 먹고 사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의미와 가치를 찾는 독특한 존재라는 걸 알려주는데, 예를 들어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이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믿을수록 헌신합니다. 하나 밖에 없는 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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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대왕

 

고대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알렉산더’에는 당시 그리스보다 엄청나게 큰 대국이었던 페르시아와 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스 군은 페르시아 군에 비해 말 그대로 중과부적, 몇 배나 적은 병력이지만 그럼에도 대승을 거두게 되는데, 비결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싸워야 할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페르시아 군은 대체로 왕의 명령으로 거의 억지로 끌려 나온 이들이라 열심히 싸워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알렉산더도 전투를 하기 전 바로 그 이유를 알려주며 분투를 호소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역사에 나오는 훌륭한 장군들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을까요?

“일단 진격해 봐. 혹시 이길 지도 모르잖아?” “알아서 싸워!”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싸우라면 그냥 싸워!” 없습니다. 조직을 잘 이끄는 리더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카페에서 일이 잘 되는 까닭은

무엇보다 효과적인 몰입은 자기 결정권이 있을 때 이루어집니다. 자기 결정권이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체스 선수나 바이올린 연주자는 웬만해서는 가지기 어려운 전문 실력을 가져야 하는데, 이런 실력을 가지려면 다 같이 모여서 연습하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혼자 연습하는 게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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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생각하면 다 같이 모여서 연습하는 게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연구에 의하면 혼자 연습한 시간이 많을수록 뛰어난 실력을 가집니다. 혼자 연습하면 의도적인 연습, 즉, 자신이 해보고 싶은 것이나 자신에게 부족한 걸 집중적으로 마음껏 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연구를 한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K. Anders Ericsson)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더 잘하려면 상황을 ‘자기가’ 주도해야 합니다. 그룹 수업을 상상해보세요. 그때는 전체 중에서 아주 작은 시간만을 주도하게 됩니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회사 앞 카페에서 일할 때 일이 잘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지켜보는 눈들이 한둘이 아니기에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딴짓’을 할 수 없지만 카페에서는 할 수 있습니다. 적당히 시끄러우니 좀 떠들어도 됩니다.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회사들이 회사 공간을 카페처럼, 놀이공원처럼 만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구글이나 픽사는 아예 직원들이 자기네들 마음대로 공간을 꾸밀 수 있게 합니다. 다 같이 일하는 회사지만, 혼자 있을 권리와 어디론가 조용히 사라질 수 있는, 요즘 말로 하자면 ‘짱 박혀 있을’ 자유를 누릴 공간을 주는 겁니다.

고독과 은신을 허(許)할 테니 자신의 방식대로 창의적으로 일하라는 거죠. 내향적이지만 창의적인 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몰입의 조건이기도 합니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이루어야 할 것에 집중하는 능력은 부가 조건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입니다. 이 세상에 생명이 존재해 온 36억 년 동안 변함없는 진리 중의 하나는 자신이 가진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하지 못해, 해내야 할 것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생명체에게 세상은 절대 너그럽지 않다는 겁니다. 아니 사실은 가혹합니다.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몰입은 가장 중요한 생존 능력입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서광원 소장 |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리더십과 조직 속성을 진화생태학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기자와 중앙일보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경영전문기자로 지냈습니다. 멋있게만 보이는 사장이라는 자리가 사실은 남모를 애환으로 가득 차있다는 것을 밝힌 책 <사장으로 산다는 것>과 <사장의 길>을 썼습니다. 또 생존에 관한 자연의 본질을 연구한 <사자도 굶어 죽는다> <살아있는 것들은 전략이 있다> 등을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