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합동 해외연수를 다녀와서(2탄)
3일차 다음날 단동에서 아침이 밝았습니다. 밤새 천둥번개로 요란하더니 아침에 잠깐 비가 멈췄습니다. 눈을 비비면서 호텔 로비를 벗어나려는 순간! 중국 소수 민족의 전통의상으로 보이는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성을 발견하였습니다. 부랴부랴 눈곱을 떼고 용기내서 사진 한 장 같이 찍기를 청했습니다.
작년 1박 2일에서 방영된 이후 관광객이 부쩍 늘어난 압록강 단교입니다. 저 멀리 북한이 보여 매우 설레었습니다. 물론 이때부터 북한이 바로 보이는 접경지역만 돌아다녀서 그런지 나중엔 큰 설렘이 없어졌지만요. 바로 옆 철교로는 많은 차와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또 짧은 단동 여행을 마치고 긴 버스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번에 도착한 곳은 집안. 고구려 국내성 터이기도 한 곳입니다. 곳곳에 국내성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나마 복원 및 보존을 위해 정비한 것이라고 하는데 과거에는 방치되어 여기에 사는 주민들에 의해 많이 훼손되었다고 합니다. 동북공정 덕택으로 그나마 우리 문화를 지키게 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는 군요.
동북공정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눈뜨고 훼손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어야 한답니다. 물론 동북공정에 앞서 우리가 먼저 지켜나가지 못한 것에 대해 눈물 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조선족 전통 불고기를 맛보았습니다. 서로 술잔을 권하며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4일차 숙취에 정신줄을 놓아버린 아침, 어김없이 버스를 타고 창 밖을 내다보는 순간 북한 땅이 또 보였습니다. 압록강에는 빨래하러 나온 북한 주민들이 보였고 그 뒤를 왜소한 북한군 한 명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맘이 편하지는 않더군요.
그렇게 국내성의 흔적이 남아있는 집안 시를 이동하던 중에 저 멀리 광개토대왕릉과 광개토대왕비가 보였습니다. 호태왕(好太王)이라 쓰여 있었는데 시호인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에서 따온 말인 듯 합니다. 유리창으로 광개토대왕비를 보호하고 있었는데 유리도 금이 가 있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하였다고 하는데 문화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아끼고 보존하려는 우리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광개토대왕비는 1700년이라는 긴 세월을 견뎌온 만큼 많은 고초를 당했습니다. 일본의 역사 왜곡의 중심에 있었으며, 문자 해석을 위해 소 똥에 뒤덮인 채 불질러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광개토대왕릉에서 5분 정도 이동하면 장군총이 있습니다. 장수왕의 무덤이자 고구려의 건축기술이 엿보이는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수왕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장수왕은 장수하였는데 무려 100세 가까이 살았다고 합니다. 그 이후 장수한 왕은 더 있다고 하는데 당시 장수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부랴부랴 환도산성터로 장소를 옮겼습니다. 환도 산성은 고구려가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천도하면서 적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가까운 산에 축조한 산성입니다. 삼면이 산으로 이뤄져 있어 난공불락의 성이지만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 로마를 공격했듯이 깎아지는 듯한 절벽의 산을 넘어온 위나라 공격에 함락되었다고 합니다.
오늘은 편안한 호텔에서의 휴식이 아닌 밤 기차를 이용하여 백두산으로 이동하는 날입니다. 집안 국내성에서의 관광을 마친 후 모두 함께 사우나를 이용했습니다. 우리나라 사우나와 다른 점이 없었습니다. 때밀이 아저씨도 있고 건식 사우나, 습식 사우나 모두 있었습니다. 그렇게 피로를 말끔히 씻어낸 후 집안 역으로 향했습니다. 역무원의 실수로 우리가 자야 할 침대에서 중국인들이 자고 있었습니다.
역무원이 웃돈을 받고 일반 의자 칸 손님을 재웠다고 하네요. 그렇게 한바탕 소동을 벌인 후 배정된 침대 칸으로 들어왔습니다. 침대 칸에는 4명이 한 칸을 이용하며 두 개의 이층침대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저는 대학생 시절 야간 기차를 이용하여 유럽여행을 다녔던 경험이 있어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미리 준비해 놓은 술과 간식을 펼쳐놓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5일차 부슬부슬 내리는 빗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다행히 도착시간이군요. 흔들리는 기차에서 푹~ 잤습니다.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날씨가 관건이었죠. 흔히 백 번 가야 두 번 천지를 구경할 수 있다고들 하는데요, 그래도 정상에 올랐을 때 펼쳐져 있을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한껏 부푼 상태로 버스에 올랐습니다. 백두산 정상까지는 입장료, 셔틀버스 2회 이용권을 구입해야 합니다. 백두산 천지 관광을 위해서는 대략 8~9만원의 비용이 소요됩니다.
최근 많이 인상되었다고 했습니다. 벤츠 승합차를 이용해 곡예운전을 경험하며 정상에 올랐습니다. 날씨는 어땠을 까요? 최악이었습니다. 모진 비바람에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죠. 강풍과 추위, 세차게 볼을 때리는 빗방울을 이겨내며 두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정말 안개와 구름이 걷히는 순간 천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대략 1평정도? 그래도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습니다. 그렇게 아쉬움을 남겨놓은 채 내려올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백두산 천지에서의 아쉬움을 달래줄 순간이 왔습니다. 연길로 이동하여 북한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정말 그 곳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아름다운 북한 여성들이 노래를 불러주는 곳이었죠. 술잔이 비면 바로 와서 채워주기도 하는데요 목소리와 말투가 매우 인상적이어서 저도 모르게 자꾸 말을 걸게 되었습니다.
50위안(약 10,000원)이면 꽃다발을 살 수가 있는데, 공연을 마친 북한 여성에게 전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진 한 장 정도 찍을 수가 있죠. 저도 꽃다발 하나를 아름다운 여성분께 전해드리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두근두근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백두산 천지의 아쉬움을 북한 식당에서 달랜 지 얼마 안되어 또 아쉬움을 남긴 채 식당을 떠나 호텔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6일차 연길에서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또 비가 오고 있네요. 정말 비를 몰고 다닌다는 게 어떤 심정인지 알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중간중간 버스에서 내려 관광을 할 때에는 비가 그치곤 했습니다. 모든 일정의 마지막으로 항일 운동의 기상이 숨쉬고 있는 일송정에 올랐습니다. 지금은 자리를 지키고 있지 못하지만 그 곳에 정자가 세워져 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만주 벌판을 바라보며 고구려가 호령하던 그 당시 시간으로 잠깐 다녀와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을 마치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관광객이 정말 많았고 한국인도 많았지만 저처럼 젊은 한국인은 없었다는 점이었죠. 젊은이들의 역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