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 그 후의 이야기 – 우리 회사에 숨어 있는 자산을 찾아라!

춘추시대, 인접한 오나라와 월나라는 서로 앙숙지간이었다. 기원전 496년, 월나라가 국상을 치르는 틈을 타 오나라가 군대를 진격시켰다. 하지만 오나라는 대패했고, 왕인 합려는 화살에 중상을 입었다. 상처가 악화되어 결국 죽게 된 왕은 아들 부차에게 원수를 갚아달라고 부탁했다.

한편, 월나라의 왕 구천은 부차의 이런 복수심을 알고 먼저 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결국 패했고, 재상인 범려와 함께 인질로 잡혀간다. 부차는 구천에게 죄수복을 입히고 말을 먹이는 노역을 시켰다. 또 외출할 때면 범려의 등을 밟고 수레를 타는 등 온갖 수모를 주었다. 그렇게 2년이 흐른 뒤, 분이 풀린 부차는 구천을 월나라로 돌려보냈다.

구천은 기필코 이 원수를 갚겠다고 이를 갈며 맹세한다. 그는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무명옷을 입고 잡곡을 먹었다. 식탁 위에는 쓰디쓴 쓸개를 달아놓고 밥을 먹을 때마다 그 쓸개를 핥으며 “구천아, 회계산의 치욕을 잊었단 말이냐?” 하고 외쳤다. 이렇게 과거의 치욕을 잊지 않도록 자신을 채찍질한 데서 ‘와신상담’이라는 고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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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힘, ‘인맥+경험’

이후 10년이 지나 구천은 복수에 성공한다. 두 나라의 흥망성쇠는 여기까지가 끝이다. 하지만 역사책을 넘기다 보면 월나라의 재상이었던 범려가 다시 등장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직자가 아니라 사업가로 나온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범려는 장사로 엄청난 부를 일궜고, 모은 돈을 백성들에게 아낌없이 나눠 주어 사람들이 그를 칭송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쯤 되면 범려라는 인물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일국의 재상까지 올랐던 사람이 은퇴 후 몇 년 안에 재벌 회장님이 된 격이다. 아무리 옛날이라지만 능력이 있어야 자리에도 오르고, 실력이 있어야 장사를 해도 돈을 버는 법이다.

범려는 원래 초나라 사람으로 국경무역을 담당하던 상인이었다고 한다. 그는 초나라와 월나라의 동맹 관계가 깊어질 때 두 나라를 오가며 물건을 중개하거나 통역을 담당했다. 그러다가 재정 전문가로 구천에게 임용됐다. 결국 장사를 하면서 초-월-오나라의 국경 지방에 대해 쌓아온 폭넓은 경험이 그를 재상으로 만들었고, 국정을 맡으며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와 지정학적 지식이 그가 다시 상인으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게 한 것이다. 결국 범려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로 커리어를 바꿨기 때문에 쉽게 성공을 거머쥘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는 회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숨은 자산(Hidden Asset)이란?

기업은 특정 분야에서 자신의 강점인 핵심역량을 바탕으로 사업을 펼쳐나간다. 그러다 경영 환경이 바뀌어 기존 핵심역량의 힘이 빠지게 되면 그 사업은 쇠퇴한다. 그렇게 되기 전에 새로운 성장 엔진을 장착해야 하는데, 문제는 역량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기존 사업을 수행하면서 쌓은 경험이나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역량을 갖추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쪽으로 진출하는 것이 좋다. 범려가 장사를 하면서 쌓아온 인맥을 바탕으로 관직에 진출했고, 공직에서 쌓은 경험을 활용해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기존에 해오던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회사 내부에 축적된 경험이나 역량을 경영학에서는 ‘숨은 자산(Hidden Asset)’이라고 한다. 최근처럼 경영 여건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는 기존 사업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기존 사업과 병행해서 새로운 사업의 씨앗을 뿌려놓는 시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이땐 회사 내부에 숨어있는 숨은 자산엔 어떤 것이 있는지 파악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숨은 자산 1 – 기존 사업의 지원 부문

숨은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첫 번째는 기존 사업을 지원하는 부문이다. 기존 사업을 백업하던 파트가 경영 여건이 변화하면서 새로운 사업 기회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미국의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다. 2018년 아마존은 이커머스를 통해서 240조 원 매출을 올렸지만, 순이익은 5조 원에 그쳤다. 본업인 전자상거래에서는 남긴 것이 없다는 말이다. 아마존이 돈을 버는 곳은 따로 있다. AWS(아마존 웹 서비스)다. 30조 원 매출에 9조 원을 순이익으로 남겼다. 영업이익이 30%에 이르는 알짜 비즈니스다.

AWS는 클라우드 컴퓨팅, 즉 컴퓨터의 ‘저장 공간’을 빌려주는 서비스다.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은 대용량의 컴퓨팅 장비가 필요했다. 수요가 몰릴 때 서버가 다운되거나 끊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피크 수요에 용량을 맞춰놓다 보면 수요가 빠질 땐 노는 공간이 생긴다는 점. 아마존은 이 여유 공간을 빌려주는 비즈니스를 생각해냈고, 지금은 회사를 대표하는 캐시카우로 성장했다.

이뿐 아니다. 가상의 저장 공간을 빌려주다 보니 실재 저장 공간으로도 눈길이 갔다. 그래서 창고를 빌려주는 FBA(Fulfillment By Amazon) 서비스를 시작했다. 전자상거래업체가 FBA 서비스를 이용하면 창고를 구할 필요도 없어진다. 이런 서비스가 무서운 점은, 한번 익숙해지고 나면 스스로 인프라를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덕분에 아마존은 꾸준한 현금 수입을 유지할 수 있다.

원래 AWS나 FBA는 아마존에서 전자상거래를 지원하기 위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전자상거래 시장에 참여하는 업체가 늘어나면서 경영 여건이 어려워지니까, 아마존은 오히려 지원 서비스를 사업화 해버려서 경쟁자들을 압도해버렸다.

이러한 종류의 숨은 자산으로는 사람도 가능하다. 2012년 법정관리 이후 웅진그룹은 거의 해체된 것이나 다름없지만, 코웨이는 아직도 잘 나가고 있다. 2010년 1조 원이던 매출이 2019년에는 3조 원으 넘겼고, 이 기세를 몰아 넷마블에 지분 25%를 1.7조 원에 넘기는 좋은 거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사람들은 코웨이 하면 정수기만 생각하지만, 의외로 공기청정기, 비데, 매트리스, 주방기기의 매출도 쏠쏠치 않다. 코웨이가 이처럼 제품을 다각화할 수 있었던 숨은 자산으로는 ‘코웨이 레이디’(이하 ‘코디’로 호칭)의 역할이 컸다. 코디는 원래는 정수기의 영업 지원 조직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경력 단절 여성을 중심으로 한 코디는 주부 고객들과 끈끈한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경영진은 코디를 플랫폼 삼아 고객에게 신제품을 제안했고, 높은 성공률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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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자산 2 – 핵심 사업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축적된 부가 기술

사람들은 디카나 폰카로 사진을 찍는다. 아무도 필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후지필름은 아직도 건재하다. 화장품과 의약품 시장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날 갑자기 후지가 ‘필름 사업도 시원찮은데 화장품이나 한번 만들어볼까?’ 하고 시장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신사업을 고민하던 경영진은 자사의 숨은 자산 중 시장성이 있는 것이 무엇일지 찾아봤고, 그 결과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

사진이 오래되면 색이 누렇게 변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화지 표면의 수분이 공기 중으로 날아가기 때문이다. 오래 가는 인화지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하면 수분이 증발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그 결과 찾아낸 것이 바로 콜라겐이었다. 그런데 사람의 피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진다. 노화를 막기 위해 세포 속의 수분을 잡아줄 수 있는 물질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콜라겐이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콜라겐을 기반으로 해서 주름 방지 화장품을 만들어냈으니, 이름하여 ‘아스타리프트’다.

시장의 반응은 어땠을까? 이 브랜드는 일본 시장뿐만 아니라 아시아, 유럽 등 전 세계로 진출했는데, 진입장벽이 높은 화장품 시장에서도 자리를 잡는데 성공했다. 최근에는 필름에서 화장품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제약사업에도 뛰어들었는데, 2020년에는 이 사업에서만 매출 10조 원을 바라보고 있다. 위기 상황을 맞닥뜨린 후지는 ‘숨은 자산’을 활용하는 법에 눈을 떴고,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화장품 및 제약업체로 성공적인 변신을 거듭할 수 있었다.

킹덤, 나르코스, 기묘한 이야기, 하우스 오브 카드를 흥행시킨 넷플릭스도 이런 케이스다. 원래 넷플릭스는 다른 제작자들이 만든 콘텐츠를 유통하는 회사였다. 하지만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의외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다. 고객이 어느 장면을 돌려보는지, 어떤 배우가 나오는 장면을 건너뛰는지 등…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소들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축적하게 된 것이다.

넷플릭스는 이런 정보를 제작 과정에서 충분히 활용한다. 하우스 오브 카드를 만들 땐 미국 사람들이 정치 드라마에 어떤 배우가 나왔을 때 가장 시청률이 높았었는지를 조사해서 케빈 스페이시를 캐스팅했고, 스토리라인을 구성할 때도 과거 유사 드라마의 인기 패턴을 충분히 활용했다. 역시 기존 비즈니스를 하던 과정에서 축적된 숨은 자산을 잘 이용함으로써 어려운 분야로의 확장을 성공적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

 

숨은 자산 3 – 충성도 높은 고객

초창기 카카오는 고민이 많았다. 가입자는 늘어가고 있었지만, 돈은 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입자만 늘어나면 돈이 따라올 줄 알았는데, 기대했던 매출은 따라오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점은 가입자들이 카카오톡을 사용하는 시간과 빈도가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카카오는 충성도 높은 고객을 자산으로 삼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로 한다.

먼저 ‘카카오 프렌즈’라는 이모티콘을 팔아봤다. 사람들의 호응은 폭발적이었다. 인지도 조사 결과 2015년 7위에서 2016년에는 4위로 뛰어오르더니 2017년부턴 ‘뽀로로’나 ‘짱구’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압도적인 1위를 계속해 오고 있다. 아마 몇 년 뒤엔 ‘라이언’이나 ‘피치’가 디즈니 캐릭터인 백설공주 정도의 지위를 차지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방식의 사업 확장에 눈을 뜬 카카오는 카카오 게임을 거쳐 카카오 페이지를 시장에 내놨다. 카카오 페이지는 웹툰이나 소설을 제공하는데, 2019년 매출 4,000억 원을 달성했다.

그뿐만 아니다. 카카오는 충성도가 높은 가입자를 기반으로 해서 온라인 쇼핑이나 금융 쪽으로도 차근차근 사세를 넓히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 마침내 2019년 카카오는 3조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덕분에 회사의 시가 총액도 20조 원으 넘겼다. 충성도 높은 고객이라는 자산을 활용해 수익성이 낮은 메신저 시장에서 ‘개방형 소비 생태계’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최근 GE가 판매하는 항공기 엔진에는 천 개가 넘는 센서가 붙어있다. GE Digital은 이 센서에서 나오는 신호를 분석하여, 수 주일 전에 고장 여부를 미리 알아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엔진 고장으로 비행기를 세워두는 시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서비스 역시 GE의 엔진을 수십 년간 구매해오던 항공사와의 끈끈한 관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똑같은 엔진이라고 해도 단거리 위주의 비행 빈도가 높은 국내선과 장거리이지만 비행 빈도가 낮은 국제선은 유지, 보수 시기가 천차만별이다. 이런 특성을 고려해 정확한 분석을 하려면 축적된 데이터의 양이 엄청나야 했는데, 이를 양해해주었던 충성도 높은 고객 덕분에 새로운 시장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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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숨은 자산’ 찾기

앞에서 다양한 산업에서 숨은 자산을 찾아 역량을 강화해 온 사례들을 살펴봤다. 변화하는 환경하에서 새로운 사업에 대한 고민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하지만 활용할 자산엔 어떤 것이 있는지부터 먼저 확인하자. 맨땅에 용감하게 부딪히는 것보다, 그나마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면 실패할 위험을 훨씬 줄여놓고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GS칼텍스는 ‘에너지 기업’으로 대규모 설비와 운영 역량을 확보하며 경쟁력을 키워왔다. ‘숨은 자산’을 먼 곳에서 찾을 게 아니라, 지금까지 경쟁력이 되어온 기반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에너지 기업’으로 기존 사업의 핵심 역량을 강화하면서 더욱 더 폭넓게 에너지의 본질을 이해하고 의미를 확장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내부 역량만으로 한계를 느낀다면, 외부와의 적극적인 협업을 통한 동반성장도 고려하는 유연한 자세도 갖춰야 할 것이다.

 

 


이우창 소장 | HSG 휴먼솔루션그룹 경영전략연구소장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요크 대학교 Schulich School of Business에서 MBA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대중공업 선박해양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했으며,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10분 경영학>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는 HSG 휴먼솔루션그룹 경영전략연구소장으로 다수 매체에 칼럼을 기고 하면서, 경영 전략에 대한 강의를 진행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2015년 문화관광부 추천 우수교양도서 선정된 『일상의 경영학』 (2015), 『아웃사이더(역서) – 경영의 새로운 상식을 만든 8인의 괴짜 CEO』 (2013), 『세상 모든 CEO가 묻고 싶은 질문들』 (2012), 『우리는 그들을 신화라 부른다』 (201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