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마&US ]
도전과 변화의 노력으로 성장해 온 49년
회사가 지난 5월 19일 창립 49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불안정한 세계경제와 급격한 유가변동 등 예측할 수 없는 대외환경 속에서도 끝없는 도전과 혁신으로 대한민국 대표 글로벌 기업의 위치까지 우뚝 선 GS칼텍스. 대규모 장치산업이라고 해서, 변화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입니다. 49년 간 수많은 대외환경 변화 속에 살아남고, 성장해 온 것은 과감한 도전과 무수한 변화의 노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새로운 투자와 설비증설 같은 큰 변화들 이외에 49년간 기억 한편에 자리잡고 있는 몇 가지 도전과 변화의 사례들을 살펴봅니다.
도전과 변화의 기억들
1966 년 11월
1965년 1월 정부에 “한국석유화학공업㈜ 사업계획서”를 제출하였으나 제2정유 실수요자를 공모하겠다고 하여 승인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석유사업에 대한 가능성을 믿으며 1966년 실수요자 공모에 철저한 준비로 도전, 경쟁사들을 제치고 결국 제2정유 실수요자로 선정되었습니다. 1968년 영업개시 시기에는 여타 경쟁사들의 파격적인 대리점 지원 정책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노력 끝에 정상적인 영업개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회사설립 이전부터 도전의 역사는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1969년 3월
국내 최초의 민간 정유업체로 여천공장 가동을 사흘 앞두고 사우디아라비아 산 원유 36만 배럴을 수입했습니다. 이는 정부가 아닌, 민간기업이 원유를 수입한 최초의 사례로 GS칼텍스 도전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라스타누라항에서 원유 35만 9,184배럴을 선적한 원유선 ‘칼텍스 네덜란드’호가 도착). 같은 해 4월 최초의 정유제품을 출하시키기도 하였습니다.
1973년 3월
컴퓨터 시스템의 도입을 본격 추진하여 1973년 본사 컴퓨터시스템을 첫 가동(IBM System 3/Model 10)하며 업계 최초 도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1977년 컴퓨터시스템을 통하여 각 저유소의 온라인 주문출하가 개시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내 운영시스템의 변화를 통해 경영합리화 및 업무능률 극대화를 꾀할 수 있었습니다.
1981년 3월
4차 확장사업에 소요되는 비용 중 2억 달러를 정부 지급보증 없이 외국은행 및 금융기관으로 구성된 차관단으로부터 차관도입 했습니다. 이는 도전적인 대규모 차관의 첫 사례이기도 합니다. 이후 4차 확장으로 회사의 정제능력을 38만 배럴로 증가시켰고(380 프로젝트), 잉여시설을 활용한 임가공 수출을 시작하는 혁신적인 성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1985년 3월
19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석유소비 구조의 경질화 추세는 세계 석유시장에서 경질원유 확보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경질원유와 중질원유의 가격 차이를 벌려 회사에 부담요소로 작용하였습니다. 이러한 경질유 수요증가에 대처하기 위해 원유정제시설 일부를 비스브레이커 공정으로 개조하여 국내 최초로 중질유분해시설을 가동하는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였습니다. (이는 국내 최초의 중질유분해시설로 RFCC를 도입하는 등 첨단기술 도입을 선도하는 계기가 마련됨)
1986년 1월
1986년 1월 6일 회사의 기술연구소가 설립되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신기술 개발 및 제품•공정 기술 연구를 위해 설립된 이후 1998년 대전 중앙기술연구소가 준공되었고, 지난 30년간 회사 제품들의 기술개발에 큰 역할을 담당하며, 도전과 변화에 일조해왔습니다.
1986년9월
합작투자 3차 수정계약을 체결하여 칼텍스로부터 경영권을 인수받아 공동대표에서 단독경영체제로의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의사결정의 신속화가 가능해져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었고 대외적으로 회사의 주체성과 국제감각을 돋보이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사업 다각화의 효율적 추진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1989년-1990년
전사적 경영혁신 운동 ‘V프로젝트’를 추진하여 장래상을 확정하고 새로운 비전과 경영이념을 선포했습니다. 이후 사내 중복업무를 제거하기 위하여 6개월 동안 본사 전 부서의 업무를 진단하고, 1년간 제작된 약 5,000 종의 문서조사를 통해 회사 고유의 사무혁신 운동인 WHINOT 운동을 진행했습니다. 이는 업무효율화를 통한 회사역량의 전략적 강화에 일조하였습니다.
1991년 4월
1991년 업계 최초로 펌뱅킹시스템을 도입하여 고객이 은행을 통해 유류 구입대금을 입금/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고객편의와 업무비용 절감효과를 거두었습니다.
1992년 4월
고객만족을 위한 제1회 ‘고객의 달’ 캠페인을 실시하고, 고객서비스팀이 업무를 개시했습니다. 한발 빠르게 시작된 고객중심 경영은 2009년 국내정유사 최초로 한국소비자학회 소비자대상 수상은 물론, 최근 국가고객만족도(NCSI) 주유소 부문에서 7년 연속 만족도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94년 6월
업계 최초로 종이식과 카드식(P·P카드) 두 종류의 상품권을 발행해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종이식 상품권뿐만 아니라 카드식 상품권을 출시함으로써 주유한 만큼 계산되고 남은 금액이 사용할 때마다 인쇄되는 편리한 시스템으로 고객편의를 대폭 향상시켰습니다.
1995년
국내 최초로 ‘테크론’이라는 휘발유 브랜드를 도입하여 제품 차별화를 이끌었습니다. 또한 하루 생산 7만 배럴 규모의 중질유분해시설(RFCC)의 완공을 통해 휘발유 생산수율을 극대화, 회사의 휘발유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들이 이 시기에 마련되었습니다.
1996년 10월
국내 최초로 북미 알래스카산 원유 장기도입 계약을 체결하며 중동산 원유 의존도를 낮췄습니다. 이미 당시에 원유도입선 다변화를 위해 중동 외에 에콰도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서 원유를 도입하고 있었으며, 이는 회사의 운영효율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변화를 꾀한 사례입니다.
1997년 4월
국내기업 최초로 미국기업어음 발행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는 국가 신용등급이 투자 부적격상태인 상황에서도 민간기업 최초, 자체 신용을 바탕으로 성공한 것이어서 대외신용도 입증 및 현금유동성을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7년 9월
국내 정유업계 최초로 품질과 환경규제가 까다로웠던 미국시장에 휘발유를 수출했습니다. 국내업계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에서 처음 이뤄낸 성과로서 석유제품의 구미시장 개척의 물꼬를 튼 도전적 사례로 평가 받았습니다.
1998년 6월
고객서비스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보너스 카드제를 도입했습니다. 고객의 주유소 이용실적에 따라 포인트를 주고 포인트 누적에 따른 선물과 다양한 혜택을 주는 제도를 시행함으로써 마케팅 전략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습니다.
2000년 1월
회사의 21세기 비전인 ‘The Leader in Providing Total Energy Service’를 선포하고, 종합에너지기업으로서 도약의 시작을 널리 공표했습니다. 이후 2014년 Value No.1 Energy & Chemical Partner이라는 비전을 선포하며 새로운 미래를 기약했습니다.
2006년
다양한 수상실적을 기록한 한 해로, NSC(국가안전보장회의)로부터 Safety Leadership Award 수상, 고액납세의 탑 수상, 여수공장 한국능률협회 생산성위원회 주체 ‘에너지혁신 분야’ 대상 수상, 2006년 대한민국 녹색경영대상 수상 등 끊임없이 도전하고 성장해가는 회사의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2012년
2006년 전체 매출액 중 수출 비중이 50%를 넘어선 후 2012년 67%, 2013년 68.2%, 2014년 66.3%, 2015년 68.9%를 차지할 정도로 해외로 뻗어나가고 있는 GS칼텍스. 수출 비중의 비약적인 증가는 다가올 주변환경을 고려한 적기투자, 혁신적인 고도화시설 확충 등 도전적인 시설경쟁력 확보가 밑받침되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2011년 국내 정유업계 최초이자 국내기업 가운데 두 번째로 200억불 수출의 탑을, 2012년에는 250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1967년 국내 최초의 민간 정유회사인 호남정유로 출범한 이래 국내 석유 에너지의 3분의 1 이상을 공급하며 국가 경제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도전과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였습니다. 본문에 소개되지 않은 도전과 혁신의 사례들도 매우 많이 있는데요. 이러한 과거의 우리 모습을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초경쟁사회를 현명하게 맞이하기 위해, 미래를 준비하는 GS칼텍스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