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엔 기존 사업, 다른 손엔 신사업…양손잡이 조직으로 탈바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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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엔 기존 사업, 다른 손엔 신사업…양손잡이 조직으로 탈바꿈하라
류현진이 대단한 선수라는 건 체인지업과 슬라이더가 서로 상극인 구종이기 때문이다. 직구와 같은 폼으로 던지는 체인지업은 공을 놓는 포인트가 높아야 하고, 좌우 변화가 중요한 슬라이더는 아무래도 팔의 높이가 낮을 수밖에 없다. 두 구질을 던질 때 사용하는 근육도 다르거니와 의식적으로 팔의 높낮이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정상급 투수라 할지라도 두 구종을 모두 잘 던지기는 어렵다. 리그 최강의 슬라이더 투수로서 사이 영(CY Young) 상(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매년 각 리그의 최고 투수에게 주어지는 상)을 수상한 LA다저스 커쇼도 체인지업은 던지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류현진도 슬라이더를 던지기 시작하자 체인지업이 밋밋해졌고 나중에 체인지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자 슬라이더가 무뎌지는 모습을 보였다. 하기야 어디 야구뿐이겠는가? 비즈니스에서도 그렇다. 서로 모순되는 분야를 모두 잘한다는 건 쉽지 않은 노릇이다.

기업이 당면하고 있는 모순, 탐구와 활용

한 손엔 기존 사업, 다른 손엔 신사업…양손잡이 조직으로 탈바꿈하라
기업을 법인이라고 한다. ‘법적인 사람’이라는 의미다. 가끔은 법’인’이 진짜 ‘사람’같을 때가 있다. 예컨대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밥을 먹으려면 불편한 것처럼 일단 어떤 한쪽에 익숙해지면 다른 쪽을 사용하는 게 잘 안되는데, 이는 회사도 마찬가지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회사의 행동도 오른손 행동, 왼손 행동으로 나눌 수 있다. 오른손 행동은 이미 가지고 있던 전략, 시스템, 기술, 지식, 문화 등 기존 역량을 ‘활용(exploitation)’하는 것이다. 기존 사업의 매출을 확대하고 효율을 높이기 위한 여러 활동들을 떠올려보면 된다. 그에 비해 왼손 행동은 새로운 역량을 찾는 ‘탐구(exploration)’ 활동이다. 신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기존 역량의 ‘활용’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효율을 높이고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다. 반면 새로운 영역의 ‘탐구’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창조적인 사고와 과감한 리스크 감수다. 문제는 이 두 가지 행동이 전혀 다른 역량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 그래서 둘 모두를 잘하기란 몹시나 힘든 일이다. 마치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글을 쓰는 것처럼 말이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탐구와 활용 패러독스’라고 한다.
​정반대되는 이 두 가지 행동 유형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 기업은 어떤 쪽으로 쏠리게 될까? 대다수 사람들이 오른손에 익숙하듯이, 기업 역시 기존 역량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간다. 당연한 일이다. 새로운 사업분야나 전략, 시스템, 기술 등에 대한 모험적 ‘탐구’는 불확실성과 실패 리스크가 높기 때문이다. 설사 성공한다 하더라도 수익으로 연결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이미 지니고 있는 역량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활용’은 불확실성과 실패 확률이 낮고 성과도 바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대부분 회사들은 현재 잘하고 있는 역량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눈앞의 단기 성과와 기존 사업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몰두하게 된다. 문제는 ‘활용’만 반복하다 보면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된다는 점이다. 기존의 성공 방식을 계속해서 활용하다 보면 다른 대안이나 가능성은 자꾸 무시하게 되는데, 그러다 경영 환경이 달라지기라도 하면 오른손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1900년대 초 작은 시계 점포로 출발한 시어스(Sears)는 50년 가까이 미국 유통업계 1위 자리를 지켰다. 유통업에서 시어스의 지위는 범접할 수 없는 견고한 성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80년대가 되니 성 주변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가전제품만 파는 ‘베스트바이’라든지 할인판매를 하는 ‘타깃’ 같은 매장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난 것이다. 그만큼 시어스를 찾는 소비자는 줄어들었다. 이때가 왼손을 사용할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경영진은 변화를 외면했다. 50년 넘게 오른손만 쓰다 보니 왼손을 사용하는 게 불편했기 때문이다. 시어스는 제품 광고를 더 세련되게 만드는 한편, 매장을 더욱 화려하게 꾸미는 데 힘을 쏟았다. 오른손을 더 많이 쓰는 방향으로 대응한 것이다.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시어스는 2018년 100년의 역사를 뒤로 한 채 파산하고 말았다.
이제 익숙한 오른손만 사용하던 기업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양손을 모두 잘 쓰는 혁신 기업들이 전통적인 강자를 무너뜨린다. 세계적인 경영 사상가인 게리 하멜은 이런 현상에 주목하여 ‘21세기에는 끊임없는 창조적 혁신이 기업의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 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기존에 잘 하고 있는 ‘효율성’은 그대로 유지하되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혁신’까지도 잘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신사업을 위한 양손잡이 조직을 구축하라

한 손엔 기존 사업, 다른 손엔 신사업…양손잡이 조직으로 탈바꿈하라 | magazine ambidextrous management 03 2
정유업계는 어떤가? 정유산업은 철강, 이동통신과 더불어 대표적인 설비업종이다. 설비업종은 그 특성상, 일단 인프라가 구축되고 나면 효율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운영 효율을 높이는 쪽으로 성과를 거둔 사람이 조직에서 인정받고 승진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오른손 역량은 꾸준하게 강화된다. 왼손도 써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오른손 조직이 거두는 높은 성과에 가려 그 목소리에는 힘이 실리지 않는다. 성공은 좋은 것이나, 이런 성공이 오래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그 조직은 환경 변화에 취약해진다.
예를 들어 비정상적으로 낮은 유가가 지속되거나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이 덮쳐 사람들이 소비를 줄인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기존 사업에서 매출 확대를 기대할 수 없기에, 신사업으로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성공 여부는 역시 왼손을 얼마나 잘 사용하느냐에 달려있다. 기존 정유사업과 비슷한 분야로 다각화를 추진한다면 오른손만 잘 써도 큰 문제는 없겠으나 수익성이 높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에 정유업의 현황이 안 좋아서 신사업을 추진했으니 말이다. 만약 기존 사업과는 동떨어진 낯선 분야로 사업을 넓히고 있다면 이제 왼손을 얼마나 잘 쓰느냐에 따라 회사의 흥망이 갈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신사업을 추진할 때엔 ‘양손잡이 조직(Ambidextrous organization)’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언뜻 모순처럼 보이지만, 양손잡이 조직이란 오른손잡이 조직으로서의 장점, 즉 기존 사업에서의 효율성은 그대로 유지하되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왼손잡이 조직의 특징, 즉 기술이나 디자인, 비즈니스 모델 등에서의 새로운 ‘혁신’까지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조직 구조를 말한다. 하지만 오른손잡이에게 왼손을 쓰라고 강요한다고 금방 되는 것이 아니듯 기존 역량의 ‘활용’에 익숙한 기업에게 혁신을 요구했다간 대부분 실패로 끝나기 십상이다. 따라서 양손잡이 조직을 처음부터 전체 조직에 적용하기보다는 새롭게 구성되는 신사업 조직에 먼저 적용해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롭게 갖춰지는 왼손잡이 조직은 어떤 요건을 갖추고 있어야 할까?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은 실패를 용인하고 실패로부터의 학습을 권장하는 조직문화다. 신사업이란 큰 도전이며 시간도 오래 걸리는 경우가 보통인데, 그 과정에서 실패를 거듭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보수하는 공사 현장에서 인부들이 다리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였다. 빈번한 안전사고 때문에 고민이 깊어지던 건설회사는 인부들이 작업하는 현장 아래쪽으로 안전 그물을 설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물을 쳐놓고 나니 다리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없어졌다고 한다. ‘떨어져도 괜찮아’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자 ‘심리적 안정감(Psychological Safety)’을 얻고 일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기존 조직에서 흔히 그렇듯 과정상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해서 곧이곧대로 문책하는 분위기라면 그 누구도 신사업 조직에서 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신사업 조직에는 기존 조직에 적용되는 평가, 보상 시스템과는 다른, 별도의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신규사업에 대한 새로운 투자가 성과로 이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신규사업은 그 특성상 시작하자마자 바로 수익을 내는 경우는 드물고, 따라서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힘들다. 이런 경우엔 마일스톤(milestone) 방식의 보상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연구개발이나 고객 확보 등 수익과는 무관한 중요한 단계를 정해두고 보상을 하는 것이다. 미국의 전자장비 제조업체인 테크트로닉스(Tektronix)는 신사업을 시작할 때, 생산 수율, 거래처 확보 건수 등 4가지의 마일스톤을 정해 놓고 각 단계를 달성할 때마다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신규 사업의 경우, 초기에는 수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니 사업 초기 5~7년 동안 매출로 성과를 평가하지 않음으로써 우수한 직원들을 왼손잡이 조직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자, 이제 정리해보자. 경영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중요한 건 점진적인 개선이 아니라, 창조와 혁신 그리고 경쟁자보다 빠른 속도가 되었다. 이런 새로운 환경에서는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상품이나 기술, 비즈니스 모델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창조적 혁신 역량이 경쟁우위의 원천이 된다. 이제 경영자들은 기존 역량을 활용하는 오른손 조직과 신성장 동력을 빨리 만들어낼 수 있는 왼손 조직을 모두 잘 쓸 줄 알아야 한다. 야구선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모두 던질 줄 알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 본 글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GS칼텍스의 공식입장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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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창 소장 - HSG 휴먼솔루션그룹 경영전략연구소장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요크 대학교 Schulich School of Business에서 MBA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대중공업 선박해양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했으며,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10분 경영학>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는 HSG 휴먼솔루션그룹 경영전략연구소장으로 다수 매체에 칼럼을 기고 하면서, 경영 전략에 대한 강의를 진행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2015년 문화관광부 추천 우수교양도서 선정된 『일상의 경영학』 (2015), 『아웃사이더(역서) – 경영의 새로운 상식을 만든 8인의 괴짜 CEO』 (2013), 『세상 모든 CEO가 묻고 싶은 질문들』 (2012), 『우리는 그들을 신화라 부른다』 (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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