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에서 출발하는 혁신

기술의 발전, 업종의 경계가 사라진 경쟁, 파악하기 어려운 고객의 니즈때문에 많은 기업이 느끼는 위기감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혼란의 시대였던 르네상스 시대에서 이런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수많은 전쟁을 치렀던 르네상스 시대의 전쟁 영웅 카스트루초는 그의 아들 파골로에게 “혼란스러운 세상에서는 너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만약 네가 전쟁을 치르기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면 너는 평화의 방법으로 나라를 다스려라”라고 말했습니다. 무력이 부족했던 아들에게 힘을 키워 전쟁에서 꼭 승리해야된다는 말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알맞는 방식으로 살아갈 것을 당부한 것입니다. 이는 불확실성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기업에게 던져야 할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기업에게 나다움이란?

기업에게 ‘나다움’이란 고객으로부터 인정받는 새로움과 차별화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똑같은 기능과 비슷한 디자인의 제품들이 쏟아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고객이 경쟁사가 아닌 우리 기업을 선택하게 하기 위해서는 고객에게 각인된 우리 기업만의 차별점이 있어야합니다.

차별점의 시작은 간단한 물음에서 시작합니다. “우리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우리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가?”와 같이 기업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죠. 이 질문의 답은 전략, 운영, 인사 등 기업 전반의 경영 프로세스(How)를 거쳐 최종적으로 제품(What)에 담깁니다. 이렇게 ‘나다움’의 가치가 담긴 제품을 선택한 고객은 제품을 사용하면서 ‘우리 기업’을 경험하고, 기억에 남깁니다.

‘기업이 나다움을 안다는 것’의 순기능 vs 역기능

베인앤컴퍼니에서 전 세계 글로벌 기업의 CEO들을 대상으로 “가장 많이 활용해 본 경영 방법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1위로 나온 답변은 ‘벤치마킹’이었습니다. 하지만 벤치마킹의 성과는 미미했습니다. 다른 경영 방법과 비교해보니, 하위권에 자리잡고 있는 전략이었습니다. 즉, 많이 활용하고 있으나 제대로 활용하는 회사는 많지 않다는 이야기이지요.

통상적으로, 기업은 위기에 직면하면 내부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 결과 벤치마킹, 오픈이노베이션 등, 외부의 자원으로 전략적 대응을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충분히 성찰하지 않고 외부로 눈을 돌린다면, 경쟁자를 쫓아가는 수준에 그칠 뿐입니다.

oct insight 04 1 10월호 기업소식, 매거진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내부로 시선을 돌리면 됩니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성찰한다면, 현재의 강점은 물론이고 숨은 강점까지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실현으로 이어집니다. 성찰로 찾은 장점을 어떻게 실현시킬지를 고민하게 되고, 외부와 연결할 수 있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스스로 중심이 된다면 단순히 남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벤치마킹 또는 오픈이노베이션’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순기능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주의해야 할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나다움’을 고민과 성찰이 아니라, 사업과 제품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수많은 기업이 이런 잘못된 생각때문에 경쟁에서 도태되었습니다. ‘나다움’이란 더욱 근본적인 물음에서 피어납니다. 즉,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가 무엇인가?” “핵심역량은 무엇인가?” 등 근본적인 질문의 답입니다. 그러므로 핵심사업과 핵심역량은 반드시 구분해야 합니다.

코닥이 몰락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많은 전문가들은 공통사항을 지적했습니다. 내리막길에 접어든 핵심사업인 필름 분야를 포기하지 못한 점이죠.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를 최초로 개발하고도 주력했던 필름 사업을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디지털 카메라의 개발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필름이 필요한 디지털 카메라인 어드밴틱스 프리뷰(Advantix Preview)를 출시하게 됩니다. 디지털 카메라의 장점은 필름이 없다는 점입니다. 필름이 필요 없는 강점을 갖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하면서 추가로 필름을 구입하고 싶어하는 고객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결국 2012년, 코닥은 법정파산보호를 신청하게 됩니다.

나다움을 알고 성공한 기업 사례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로 접근하는 구글

구글의 미션은 ‘세상의 모든 정보를 쉽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되는 구글의 도전을 보면, 이런 미션은 빈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슬로건은 구글의 모든 의사결정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구글은 세상의 모든 정보에 쉽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는 열린 세상을 꿈꿉니다. 실제 예시로 구글은 하늘에 열기구 풍선을 띄워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프로젝트 룬(Loon)’을 발표했습니다. 열기구로 대형 무선인터넷 공유기를 구현했습니다. 열기구가 바람을 타고 전 세계를 떠다니면서 지나가는 곳마다 무료 Wi-Fi(와이파이)를 공급합니다. 프로젝트 룬을 통해 정글, 산악지역 등 지형을 가리지 않고 인터넷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남미, 아프리카 등 인터넷 소외지역에 인터넷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죠.

무인자동차와 구글 글래스 역시 운전이나 보행과 같이 ‘연결’이 어려운 일상의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되기를 바라는 구글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구글이 인터넷 검색이라는 기존 사업에 집중하였다면 어땠을까요? 구글은 경쟁자들보다 아주 약간이나마 빠른 검색을 위해 기술 개발과 광고 등 총력을 다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하지만 이는 들어가는 자원에 비해 고객에게 큰 인상을 주진 못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다음은 어땠을까요? 사람들은 구글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바꾸었다고? 자신을 지키며 혁신한 듀폰

지구 온난화와 환경 보호에 관심이 높아진 1970∼80년대, 듀폰은 오존 파괴 물질인 프레온 가스를 생산하여 환경을 파괴하는 공해 기업으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결국엔 기업 이미지도 나빠지고, 매출에 막대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기업의 존립을 뒤흔드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듀폰은 인구의 빠른 증가로 식량 공급의 확보가 미래 산업의 열쇠가 될 것이라 예감했습니다. 즉, 향후 세계를 이끌 새로운 성장 동력은 농업에 있다고 보았죠. 그래서 듀폰은 작물보호제와 농업 기술로 식량 생산량과 저장량 증대를 성취하려 했습니다. 이 기술의 핵심은 화학 기술이고, 농업의 근본인 생물학은 화학과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생물학은 듀폰에게 어떻게 보면 익숙한 분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듀폰의 최대 강점은 끊임없는 연구와 개발로 얻은 화학 기술 노하우였습니다. 여기에 생명공학이 뒷받침 된다면 어떨까요? 듀폰은 생명공학과 생물학, 화학으로 농작물과 가축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새로운 방법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듀폰은 공격적인 사업 구조 개편을 통해 농업ㆍ생명 공학 회사로 변신하였습니다. 산업의 존립이 달려있는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듀폰은 무작정 트렌드에 맞추어 회사의 핵심 가치와 기술을 바꾸지 않았고, 트렌드가 바뀌었을 때도 기존 사업만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잘 알고 있되, 시장과의 연결을 잊지 않았죠. 듀폰은 이를 위해 오픈이노베이션과 전략적 인수를 효과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성찰에서 출발한 혁신이 듀폰을 성공으로 이끌었습니다. 듀폰은 Fortune 500 기업 중 최장수 기업이자 Fortune 500 기업군 내 유일한 200년 이상 지속된 기업이 되었습니다.

oct insight 05 1 1 10월호 기업소식, 매거진

‘자화상(self-portrait)’은 self(자신)와 portrait(인물 초상화)의 합성어입니다. portrait는 라틴어 ‘protrahere’에서 유래되었습니다. ‘protrahere’는 ‘발견하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즉, 자화상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그리는 그림’인 것이지요. 램브란트, 고흐 등 많은 화가들이 삶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은 고난의 시기에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그들은 자화상으로 존재 의미를 발견하려 하였고, 존재 의미의 발견으로 삶의 의지를 회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1990년 포천 500대 기업 중 2010년까지 500대에 남은 기업은 24%에 불과하고 노키아, 코닥 등 영원할 것 같았던 많은 선도기업이 무너졌습니다. 기업과 개인 모두에게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짐 콜린스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지만 일관된 원칙이 없는 회사는 전혀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회사와 마찬가지로 실패한다”고 말했습니다. 변화와 원칙이 공존해야 합니다. 그리고, 원칙의 중심에는 ‘기업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이야 말로 어느때보다도 기업과 개인에게 ‘나다움’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oct insight 06 10월호 기업소식, 매거진
임지아 | LG경제연구원 산업연구부문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OCI의 회계팀, IFRS TFT(국제회계기준 태스크포스팀)에서 근무했습니다. 전문 영역을 확장하고 싶어 KAIST Techno MBA에 진학하여 전략을 공부했고, 졸업 후 LG경제연구원에 입사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략 프로젝트를 경험하던 중, 바이오 분야에 매력을 느껴 현재는 산업연구부문에서 바이오 분야를 전문 분야로 삼고 주경야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