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휴식이 필요한 이유: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인사이트컬럼]

뇌 휴식이 필요한 이유: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바빴던 일터를 잠시 떠나 산으로, 바다로, 해외로 혹은 집에서 갖는 휴식은 참 달콤합니다. 일에 치여 복잡했던 머리를 비우면서 쉬고 있노라면 지쳤던 심신이 회복되고 새로운 활력이 재충전되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여러분의 뇌는 잘 쉬고 있나요?

뇌가 휴식하는 특별한 방법

인간의 뇌를 흔히 컴퓨터에 비유합니다. 방대한 정보를 빠른 속도로 처리하는 점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휴식을 취할 때는 뇌와 컴퓨터가 사뭇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할 일이 없으면 활동하지 않는 컴퓨터와 달리 인간의 뇌는 쉬고 있을때도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그룹 ‘리쌍’의 노래 제목을 빌려보면 뇌는 휴식 중에도 “내가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야”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죠.

쉬는 듯 쉬지 않는 뇌의 특이한 휴식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미국의 마커스 레이클(Marcus Raichle) 교수입니다. 2001년, 레이클 교수는 인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릴 때에 분주히 활동하는 뇌의 영역에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디폴트는 기계나 프로그램의 ‘초기’ 혹은 ‘기본’을 뜻하므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우리말로 ‘기본상태회로’라 할 수 있겠습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뇌가 특정 작업에 집중할 때 활동이 감소했다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을때 활동을 재개하는 것을 말합니다. 회의 시간을 예로 들어보면, 프레젠테이션을 열심히 듣고 있을 때는 조용히 숨 죽이고 있다가 잠시 딴생각을 할 때 다시 분주하게 움직이는 곳이 바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입니다.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을 때 대기 모드가 작동하면 전력 소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입니다. 반면에 휴식 중에도 쉬지 않고 작동하는 뇌의 모습은 비효율적으로 보입니다. 왜 뇌는 쉴 때 쉬지 않는 것일까요? 레이클 교수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를 일종의 ‘파수꾼(sentinel)’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쉬고 있을 때 뇌의 안팎에서 발생한 여러 정보를 수집하고 평가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죠.

쉬는 동안 뇌가 분주한 이유

2001년 이후 뇌과학의 발전으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담당하는 일이 많이 밝혀졌습니다. 인간의 뇌가 쉬는 동안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오래된 기억을 활성화한 뒤에 과거, 현재, 미래를 오가면서 여러 종류의 생각을 다시 조합합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자신과 주변 사람, 그리고 공동체에 많은 유익을 가져옵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뇌 휴식

한국 사회는 일을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오후 시간에 ‘씨에스타’라는 공식적인 낮잠 시간을 갖거나, 주 4일제 근무를 하고 있거나, 여름 휴가를 한 달 넘게 보내는 다른 나라 사람과 비교하면 한국 사람은 워커홀릭(workaholic), 즉 일에 중독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한 덕에 과거의 급속 성장이 가능했죠. 그런데 요즘도 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만큼 생산성도 높을까요? 안타깝지만 한국 사회의 노동생산성은 매우 낮아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하위권입니다. 불철주야로 분주하게 일하지만 정작 성과는 높지 않은 것이죠.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뇌가 잘 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좀처럼 활성화할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직장에서는 여전히 기계를 이용해 대량으로 상품을 생산하던 제조업 개념으로 일을 대하곤 합니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으면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한계에 이를 때까지 버티는 식이죠.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요즘 직장에서의 일이란 주로 생각하고, 해답을 제시하고, 개념을 연결하고, 전략을 개발하고, 대안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몸이 아닌 뇌가 일하는 셈이죠. 따라서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 역시 뇌과학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비행기에는 자동으로 날아갈 수 있도록 조종하는 오토파일럿(Autopilot:자동항법장치)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자동항법장치 덕분에 기장은 비행 중에 휴식을 취하다가 위험한 이착륙 구간에 더 많은 정신력을 집중할 수 있습니다. 휴가지를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는 것은 기장이 모든 과정을 수동으로 조작하는 대신 자동항법장치에 비행을 맡기며 휴식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뇌에도 자동항법장치와 유사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존재합니다. 뇌 속의 자동항법장치는 인간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오토파일럿을 작동시키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하던 일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일에 집중하고 분주한 것만으로는 원하는 목적지에 제 때 도착할 수 없습니다. 뇌가 휴식을 취할 때 작동하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의 도움으로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갈 수 있습니다. 뇌 휴식을 통해 생산성이 향상하는 역설의 마법을 자주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최강 의사 | 서울명병원

전북대학교를 졸업하고, 한림대성심병원에서 수련 받고, 미국의사자격증을 취득한 정신과 전문의입니다. 진료실에서 환자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지만 정신과에 대한 사회적 오해와 편견을 줄이는 일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과학 향기> 등의 매체와 강연을 통해 정신과학의 최신 지견을 소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