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합동 해외연수를 다녀와서
고구려와 항일 운동 유적지를 찾아 떠난 중국 여행. 해외 많은 국가를 다녀왔지만 중국여행은 처음이었습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1년에 일부 인원을 노사 합동 해외연수를 5박 6일간 보내주는데 천사 같으신 우리 팀장님께서 제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인구 세계 1위, 면적 세계 4위,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중국. 그럼 저와 함께 대륙으로 떠나볼까요!? 참, 회사 동료인 이세훈 님께서 DSLR로 촬영해 주신 사진을 많이 활용하였습니다.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 드립니다!
1일차
바로 앞에 동방의 빛나는 구슬이 빛나고 있네요^^
상해 인구는 우리나라의 반정도 된다고 합니다. 엄청난 인구와 비례하게 거리에 차가 정말 많았지만 고가도로와 순환도로들이 설치가 잘되어 있어 교통체증은 생각했던 것보다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먼저 도착한 곳은 상해 임시정부 청사입니다. 사진 촬영은 금지된 관계로 동영상 시청 장면만 담았습니다. 중국인이 한국어 해설을 외워서 설명하는데 말투가 잊혀지지 않네요. 한국인이 관리하지 않고 있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윤봉길 의사가 도시락 폭탄으로 항일운동을 펼친 홍커우 공원입니다. 공원에는 상의를 탈의한 근육질의 할아버지들이 힘 자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상하이 엑스포를 통해 상의 탈의 금지 운동을 하기도 했었다는 군요. 홍커우 공원에서 중국인들의 건강미를 만끽하며 걸어가다 보니 곳곳에 마작판이 벌어졌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기념비와 기념관뿐 이었습니다. 어디서 폭탄을 던졌는지, 일본 고위급 인사들이 어디서 다쳤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기념관에는 윤봉길 의사 처형장면도 전시되어 있는데 굳이 그런 사진을 전시해야 하는지… 마음이 많이 쓰렸습니다.
홍커우 공원 기념비
여기서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의사’와 ‘열사’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왜 유관순 누나는 열사라고 하고 의사라고 하진 않을까요? 열사와 의사에 대하여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습니다.
열사: 나라를 위하여 절의를 굳게 지키며 충성을 다하여 싸운 사람.
의사: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제 몸을 바쳐 일하려는 뜻을 가진 의로운 사람.
이상의 풀이를 종합하여 볼 때 ‘열사’는 ‘나라를 위하여 이해를 돌아보지 않고 절의를 지킨 사람’이고, ‘의사’는 ‘의리와 지조를 굳게 지키며, 때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의 풀이를 통해 ‘열사’와 ‘의사’의 뜻을 확연하게 구분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 양자의 차이에 대하여 국가보훈처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열사: 맨몸으로써 저항하여 자신의 지조를 나타내는 사람.
의사: 무력(武力)으로써 항거하여 의롭게 죽은 사람.
중국인들은 오토바이를 많이 이용합니다. 하지만 헬멧을 착용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교통질서는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많이 뒤쳐진 것 같았습니다. 횡단보도 신호만 믿고 무심코 길을 걷다가 달려오는 차에 치일 뻔하기도 했습니다.
상해에서의 마지막 코스인 유람선 투어. 뒤늦게 탑승한 탓에 전망이 가장 좋은 유람선 꼭대기에는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인원 제한으로 직원이 이렇게 지키고 있습니다. 한번만 올라가게 해달라고 조르자 마구 화를 내던 친구입니다.
상해의 야경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상하이 엑스포를 준비하며 도로/건물 정비를 한 결과이며 현지 가이드 말로는 이렇게 보이는 것과 달리 멋진 건물들 뒤편은 좀 다르다고 합니다^^
2일차
상해에서 심양으로 비행기로 이동했습니다.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를 이륙 지연으로 인해 3시간 반이 소요되었습니다. 안내방송도 없는 친절한 비행기 안에서 대기하면서 활주로에서 점심 기내식을 먹는 추억도 남겼답니다..^^ 기내 책자를 뒤적이다가 2012년 여수 세계박람회 광고를 발견했습니다. 매우 반가웠습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심양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서울도착할 때까지 내내 비를 맞으며 여행을 다니는 불운을 맞이하게 됩니다. 빗길을 달려와 청태종의 무덤이 있는 북릉에 도착했습니다. 입장하고 난 후 아래와 같이 귀여운 셔틀버스를 이용해 수백 미터를 더 들어갔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연못이 사람이 파서 만든 것이라고 하네요. 화냥녀라는 말이 여기서 발생하게 된 것이죠. 병자호란 시 끌려갔던 조상들이 이 연못을 파게 되었는데, 어렵게 탈출하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여성들에게 환황녀라고 하여 가족들이 받아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갈 곳을 잃은 여성들은 자신들이 판 연못에 몸을 던졌다고도 합니다. 안타까운 역사의 현장입니다.
아래 사진은 청태종 무덤을 둘러싼 길입니다. 특이한 점이 길이 왼쪽으로 기울었다는 점이죠. 절름발이인 청태종의 아들을 위해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찾아가기 쉽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버지를 몇 번이나 찾아갔었는지는 의문입니다.
북릉에서 버스를 타고 긴 시간을 이동했습니다. 저는 버스나 기차에서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이동 내내 잠만 잤습니다. 2일차까지 누적된 피로가 얼마나 되는지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국 이동 내내 버스를 이용했지만 타는 버스마다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승차감이 좋지 않다는 것이죠. 마치 바퀴에 Absorber가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압록강 단교가 있는 단동으로 향했습니다. 2탄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