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곳에 가다 ]
에너지 바이크의 ‘나의 라이딩 원정기’
2009년 20명으로 시작해 현재까지 44명의 동호회원이 함께 하고 있는 생산본부 자전거 동호회 ‘에너지 바이크’. 매일 서로의 자전거 라이딩 내용을 카카오톡 채팅방에 주고받고, 라이딩 번개모임을 즐기기도 하며 자전거와 동료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기로 소문이 자자한데요. 즐거운 동호회의 표본 ‘에너지 바이크’가 지난달 자전거 국토종주를 완료하였습니다. 50세가 넘는 평균연령을 가진 동료들이 하나되어 약 633킬로미터의 국토종주를 함께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도전이었을 텐데요. 그들의 국토종주 도전기를 생생하게 그려봅니다.
* 라이딩 원정기는 에너지바이크 ‘주홍삼 과장보’의 일기를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프롤로그 – 라이더들의 꿈, 국토종주를 기획하다
지난 3월, 대마도 라이딩 이후부터 계획하고 준비한 국토종주. 말이 633킬로미터지 5일간 계속해서 라이딩을 한다는 것은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히나 한두 명도 아니고 아홉 명의 인원이 한 몸처럼 시작과 끝을 같이하여 완주한다는 것.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공존했다. 엉덩이에서부터 느껴져 올 아픔을 견딜만한 체력을 어떻게 끌어 올릴 것인가? 국토종주 시작 두, 세달 전부터 틈틈이 섬진강, 영산강 종주 등 개인별 다지기 훈련을 하였다. 교대근무, 대정비작업 등 업무로 눈코 뜰새 없이 바빴지만 라이딩에 대한 우리의 열정은 뜨거워져만 갔다. 그렇게 준비기간부터 우리의 국토종주는 시작되고 있었다.
오전 6시, 각자의 애마인 자전거를 관광버스에 싣고 종주원들이 하나, 둘 모였다. 야근을 한 동료는 잠을 못 자서 피곤한 눈을 비비고 있었다. 우리들의 평균나이는 50이 넘었지만, 전날 밤 마음속 가득한 설렘으로 잠을 설쳤다며 웃음을 나누는 얼굴에선 모두가 들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오후 12시 30분, 인천 아라서해갑문에 도착하여 분해되어 있던 자전거를 조심스럽게 조립하고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초등학교 시절 100미터 달리기를 하기 위해 출발선에 선 아이들처럼 마냥 긴장되었다. 드디어 오후 한 시, 출발선에 섰다. 다 함께 인증샷을 찍고, 속도계를 리셋한 뒤, 배낭끈을 흘러내리지 않도록 동여매었으며 선글라스를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금요일이지만 오후라 그런지 여기저기 서울사람들이 강가에 나와 자전거도 타고, 벤치에 앉아서 대화도 나누고 있었다. 다정한 연인들, 가족들, 친구들간의 즐거움이 여유로워 보였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한강의 어느 편의점에 도착하게 되었고, 이온음료 한 통씩을 들이키고 출발하려는 순간 1.5인치 타이어가 펑크가 났다. 9대의 자전거가 종주 완료 때까지 몇 번의 펑크로 고생을 할 것인가 심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타이어를 교체하고 바로 다시 출발!
오후 1시에 출발하여 오후 7시 30분까지 약 6시간 30분 동안 이동한 거리는 총 105킬로미터. 잠이 부족했던 데다가 6시간여 동안 100여 킬로미터를 달렸으니 엉덩이는 아프고 다들 힘들어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양평 시내의 한 숙소에서 허기진 배를 충족시키기 위해 시작한 삼겹살 파티가 어느 피로를 정도 씻어내 주었다. 이렇게 설렘과 긴장 속에 첫날 라이딩이 마무리되었다.
리더의 지시에 따라 아침 5시에 기상하여 새벽 라이딩으로 힘차게 출발했다. 어젯밤 삼겹살 파티로 인한 약간의 숙취와 피로가 풀리기도 전에 시작된 새벽 라이딩. 한참을 달리던 중 자전거길 차량출입을 못하게 막아놓은 봉에 페달이 걸려 한 사람이 넘어지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하였다. 장비를 안전하게 착용한 덕분에 다행히도 가벼운 찰과상으로 마무리되었다. 더욱 주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다시 페달을 밟았다.
아라한강갑문에서 충주댐까지 192킬로미터 한강종주를 완료한 뒤 우리의 라이딩에 일이 꼬여가는 신호가 나타났다. MTB자전거를 가져온 8명과 다르게 로드자전거를 가져온 한 사람, 그리고 앞만 보고 질주하던 한 사람이 충주댐 이정표를 보지 못하고 충주 탄금대까지 가버린 것이다. 그 두 명은 각자의 스피드를 자랑하다 갈라져 버렸고, 설상가상으로 로드자전거의 라이더가 핸드폰을 분실하여 연락이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만 갔다.
재접선 장소인 이화령 꼭대기 휴게소에 한 명씩 도착하기 시작하지만 오지 않는 두 명의 라이더. 한 명은 전화하니 자전거 길이 끝나고 산속으로 올라가는 막다른 길이란다. 돌아오기에는 너무 멀리 가버렸다.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오도록 지시했다. 한 명은 내일 다른 곳에서 접선하기로 할 수 밖에 없었다.
다급하고 난처했던 하루. 드디어 일행들이 이화령 휴게소에 모여 음료수를 마시며 이 상황을 웃음 반, 재미 반으로 추억한다. 잃어버렸던 한 식구를 맞이하며 얼마나 감격적인 상봉을 했던지.
문경시내에 숙소를 잡고 이날 역시 돼지고기로 바닥난 체력을 보충하였다.
선비들이 한양 과거시험길에 꼭 들려가야 했던 문경을 떠나 이른 아침 라이딩은 잃어버린 동료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힘차게 출발하였다. 드디어 헤어졌던 로드자전거 라이더를 만났다. 어색하고 미안함 보다는 반가움에 서로 껴 앉게 되었고. ‘이런 애틋한 상봉이 남자들 사이에서도 발생되는구나’하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이후 하염없이 달리다가 드디어 식당 하나를 발견! 파전 등 각종 음식을 신나게 먹다 보니, 주인장 아주머니가 기타를 들고 우리 일행 쪽으로 왔다. 제주에서 온 가수라며 자신의 노래부터 아침이슬까지 네다섯 곡을 연달아 불렀다. 흥과 함께 피로를 씻은 듯이 풀 수 있었다. 이런 게 예상치 않았던 상황의 즐거움 아닐까?
여흥을 등지고 낙동강 자전거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상주 상풍교에서 낙동강 하구둑까지 324킬로미터. 낙동강 자전거 종주길은 왕복 130킬로미터를 달리면 종주가 완성되나 시간적 제약 때문에 갈수 없음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늘의 라이딩은 강정 고령보까지 달려 오후 7시쯤 마무리하였다. 대구시내에 숙소를 정하고, 나름 유명한 음식점에서 양대창으로 푸짐하게 만찬을 즐겼다. 어제의 당혹감에서 벗어나 흥겹고 순조로운 라이딩이 이어짐에 감사함을 느꼈다.
출발을 15분 앞둔 오전 6시 15분쯤 한 라이더에게 전화가 왔다. 밤새 배가 너무 아파서 오늘 라이딩을 포기하고 집으로 가야겠다고 한다. 어쩐지 순조롭다 했더니 이게 웬 폭탄발언인가?
회장과 총무가 숙소로 가서 힘들어 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어쩔 수 없나 싶었으나, 우리를 보고 다행히 마음이 조금 바뀌면서 ‘다시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아침을 먹는 동안 다른 일행이 준 청심환 한 알이 효과가 좋았는지 점점 기력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말 다행이다. 끝까지 함께할 수 있어서.
달성보를 지나 한참을 달리다 보니 식당 겸 편의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파는 음식은 없었지만, 우리를 위해 굳이 남아있던 찬밥을 비벼서 챙겨주시는 아주머니의 선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시골의 정이 이런 것인가? 다음 라이딩이 있거든 다시 한번 꼭 들르고픈 장소였다.
창녕군 어느 인근에 도착한 작은 시골마을. 가마솥국밥을 시켜 배불리 먹고 난 후 바로 옆에 있는 다방에 가서 냉커피를 시켰다. 아직도 예전의 다방이 그대로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름 30여분 동안 추억여행을 다녀온 듯 하다.
열심히 달리던 중 라이더 한 명이 맨 후미에서 급하게 한 사람을 찾으며 큰소리로 부른다. 앞쪽의 라이더를 애타게 찾는 것이었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후 자전거 신발 한 짝이 바뀐 것인데 뒷사람은 애타게 부르며 맨 앞쪽의 라이더를 쫓아가고, 앞쪽의 라이더는 ‘더 빨리 가라는 건가 보다’ 생각하고 속력을 더 높이고. 그렇게 한참 동안 신발 한 짝을 두고 추격전이 진행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뒤쪽 라이더의 신발은 유명메이커 신발이었고, 앞쪽 라이더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메이커의 신발이었다고 한다. 필사의 추격전이 이해가 갔다.
오후 6시 30분, 합천 창녕보, 창녕 함안보를 지나 밀양 삼랑진읍에 도착했다. 아담한 작은 마을에 여관방 하나가 2만 5천원이라고 쓰여진 팻말이 보였다. 주인이 없어서 적혀있던 연락처로 전화했더니 할머니께서 밭에서 일하고 있으니, 방 호수를 알려주며 그냥 들어가 쉬라고 하신다. 이것 또한 특별한 추억이었지.
아침 6시에 출발하여 양산 물문화관 – 낙동강하구둑까지 60여 킬로미터가 남았다. 오전 8시경 부산 진입로에 도착하니 비가 내린다. 비옷을 입자니 덥고, 생활방수 바람막이를 입으니 웃옷이 젖고 진퇴양난이다. 한 30여분 비를 맞고 나니 다행히 비가 그쳤다.
오전 09시30분, 드디어 마지막 장소인 을숙도 낙동강하구둑에 도착하니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큰 사고 없이 9명이 무사히 완주한 국토종주. 혼자서는 절대로 할 수 없고, 9명이 동시에 하기에는 조금 많았던 그런 숫자였지만 우리 9명은 그 어려운 것을 해냈다.
회사 동호회라는 소속감이 있었기에, 믿고 따르는 동료들이 옆에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회사버스에 5일 간 우리와 함께한 소중한 자전거 9대를 잘 접어 넣고 인근 횟집에서 이른 점심으로 마무리 뒤풀이를 하였다. 종주 완주 기념으로 건배를 하는 동안, 부산 어느 포구 바닷가에는 늦봄의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벌써부터 다음 라이딩은 어디로 정할 것인지 묻는 동호회원들의 눈망울에서는 한없는 성취감과 열정이 느껴졌다.
에필로그 –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여운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 그들과 함께 취미를 즐길 수 있다는 것. 하나의 목표를 정하고 성취할 때까지 함께 독려할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동호회, 그리고 회사생활의 기쁨일 것입니다.